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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의 역사적 의의와 그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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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의 역사적 의의와 그 문제점

종교개혁 478 주년을 맞이하여(1995년 당시) 지난 10월의 마지막 주간에는 개신교 여러 교단에서 기념행사 및 강연회 그리고 학술 대회를 잇달아 개최하였다. 아직도 스스로를 종교개혁의 후손이라고 내세우며, 부패한 카톨릭을 개혁한 당사자요,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장본인들의 자랑스런 후예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또 일부에서는 개혁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미비점을 보완하여 "한국교회"를 개혁해 보고자 하는 결의도 다진 모양이다.

그러나 늘 그러하듯이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평가하는데 있어 가장 기준이 되어야 할 최종권위인 성경을 배제한 채 외적인 성과들을 나열하거나 외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한다는 것은 믿음과 실행의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권위로서 성경을 받아들인,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본 글에서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평가하는 종교개혁의 긍정적인 면과 아울러 부정적인 면들을 살펴봄으로써 종교개혁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시도하고자 한다.

1. 개신교와 카톨릭의 입장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시발이었던 종교개혁 운동은 오늘날의 개신 교회들에게 있어서는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A.D. 800년 샤를 마뉴가 로마 교황으로부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임명된 이래 교권을 확장해 온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십자군 운동을 통해 절대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대로 종교재판, 면죄부 판매, 교황들의 부도덕한 사생활, 성직자들의 부패 등으로 얼룩진 중세 말기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세력에 홀로 대항한 마틴 루터로부터 시발된 종교개혁은 유럽 곳곳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루터교와 개혁교회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은 로마 카톨릭 당국의 권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으며, 그 열매로 종교의 자유를 가져왔고,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켰으며, 자본주의 제도를 시도하여 중산층이 생겨남으로써 카톨릭 전체주의의 몰락을 가져왔다. 종교개혁 이후 전세계의 역사는 개신교를 채택한 국가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며 이들의 선교 열정으로 전세계에 복음이 확산되었다.

종교 개혁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평가는 매우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종교개혁은 인류 문명에 일어난 가장 무시무시한 재앙이었다고 평가한다. 교황의 추종자들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악의 근원은 분열이요, 이 문제는 전세계가 "교황" 아래서 뭉쳐질 때까지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당신들이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었지만 그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우리도 계몽되었으니 이해하고 지내자."라고 하면서 "길 잃은 형제들"을 한 우리 안으로 모으려고 한다(에큐메니칼 운동).

루터, 칼빈, 베자, 낙스, 쯔빙글리 등과 같은 개혁자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 시작하자 로마 카톨릭은 이 반역자들을 "참되고 유일한 거룩한 사도 교회"를 전복시키려는 "지옥의 권세들"이라고 간주했고 이 불빛을 꺼버리기 위해 "반동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반격을 시도했다.

2.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입장

서구 사회에 암흑시대가 도래한 사건에 대해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은 (될린져, 뉴만, 샤프, 라가르드, 라토레, 모쉐임) 그 원인을 "게르만족의 침입", "제국의 분열", 그리고 "봉건제도" 등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게르만족의 침입이 멈추었을 때에도 암흑시대는 지속되었고, 십자군 전쟁으로 온 유럽이 단합되었어도 암흑시대는 지속되었다. 따라서 성경적 진리가 사라져 버리고 A.D. 500-1000년 사이를 뒤덮은 영적인 암흑의 책임을 "시대상황"이나 "제도"에다 돌릴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누군가가 성경을(요 17:17) 사람들의 손에서 빼앗아 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딤후 3:16) 섭리로 보존하셔서(시 12:6,7)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수하여 주신 그 성경이 오리겐, 유세비우스, 콘스탄틴 등에 의해 변개되었고 이 변개된 본문은 암흑시대 교황들에 의해 카톨릭의 공식성경이 되고 말았다. 바로 이 변개된 성서가 암흑시대를 초래한 장본인이었다.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마태복음 19:7의 "이혼증서"란 단어의 헬라어는 "비브리온 아포스타이온"로 "배교한 성서"란 뜻이다. 즉 박해의 늪에서 벗어나 세상과 결혼해 버린 음녀인 로마 카톨릭 교회에게 하나님게서는 이혼증서인 배교한 라틴 벌게이트 성서를 주었고 이에 곧바로 암흑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그런데도 카톨릭 교회와 친카톨릭 개신교 학자들은 콘스탄틴에 의한 기독교 공인을 배교가 아닌 기독교의 승리로 해석한다.)

빛(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이 사라지고 흑암이 전 유럽을 뒤덮었고 영적인 소경들이 소경을 인도하여 구덩이에 둘 다 빠져버리는 상황이 1000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부터 오직 성경만을 최종권위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살던 소수의 무리들은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을 배교로 규정하고 카톨릭 교회로부터 성경적 성별을 하였고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그 성경(표준원문, 구라틴 역본 등)을 고수하면서 주님을 증거했다.

또 카톨릭에 의한 박해와 살상으로 전 유럽에 흩어져서 지하운동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성경을 보급하던 이들 무리들(몬타니스트, 노바티안, 도나티스트, 네스토리안, 유가이트, 메살린, 폴리시안, 불가리안, 보고밀, 카타리, 왈덴스 등)은 십자군 운동, 흑사병 및 르네상스 등으로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조성하신 여건들 속에서 1300년부터 1500년까지 대대적인 거리 설교 사역과 팜플렛 사역을 전개하였다. 이들의 노력과 카톨릭 내부에서 발생한 동요로 인해 교황권이 도전받았던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전직 신부였던 마틴 루터를 일으켜 세우신 것이다.

우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암흑시대의 도래가 마귀의 성서(이혼증서)로 비롯된 것처럼 종교개혁 역시 하나님의 성경인 헬라어 표준원문과 이에서 번역된 루터의 독일어 성경,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을 비롯한 유럽 각국 언어로 번역된 성경들로부터 시발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그 원문을 성령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셨고, 그 성경을 사용하셔서 전세계에 영적 부흥을 가져오신 것이다.

3. 종교개혁의 긍정적인 면

앞서 언급했듯이 종교개혁의 첫 번째 성과는 성경대로 믿는 무리들이 보존해 온 헬라어 표준원문이 각 민족의 언어들로 번역되면서 확산된 것이다. 이 헬라어 표준원문은 160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영어 번역본인 <킹제임스성경>은 9억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이 성경으로 교회의 필라델피아 시대가 도래하였고(1500-1900) 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계 3:8).

둘째, 종교개혁의 업적은 종교개혁자들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성경을 계속 사용하고 인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성경공부로 이끌었다는 것이다(딤후 2:15, 마 28:18-20). 종교개혁의 결과 일어난 영적 부흥들은 낙스, 베자, 멜랑히톤, 루터 등의 전통 교리 덕분이기보다는 오히려 성경 읽기와 성경 읽기에 대한 신뢰에 있어 그들이 보여준 태도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종교개혁의 결과 전세계적인 조직을 갖고 있는 외국의 독재자(바티칸 교황)가 더이상 각 나라들의 그리스도인들을 통제하지 못하게끔 되었다는 사실이다. 카톨릭 교회는 반동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및 왕위 계승 전쟁을 통해 실지회복을 노렸으나 변개된 성서들이 (1881년 이후) 나오기까지는 그 권세가 위축되었다.

넷째, 성경의 권위(시 138:2)와 성도들의 제사장직(벧전 1:9)에 대한 강조로 인해 로마의 권위들(교황, 사제, 전통 등)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다섯째, 자본주의제도의 도입으로(마 26:15, 행 5:4) 제 3의 계급인 중산층이 생겨나서 카톨릭과 공산주의 및 파시스트와 같은 전체주의 체제를 세우고자 하는 선동가들에 대해 완충역할을 담당했다. 개신교가 우세한 나라들은 이제껏 공산주의나 파시스트 같은 전체주의에 미혹당하지 않았다(히틀러의 독일의 경우는 1850년 쯤에는 루터교가 거의 카톨릭화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개혁자들은 설교를 부흥시켰고 이 설교를 통해 곳곳에서 도덕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여섯 가지 사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신약 지역 교회들의 행적을 묘사한 것임을 단번에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행 2:41-47을 참조할 것). 이외에도 종교개혁의 열매로 메노파, 둥크파, 모라비안 및 아미파 등이 등장하여 복음주의 운동이 확산되기도 하였다.

4. 종교개혁의 부정적인 면

이와 같은 긍정적인 열매들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의 유산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다.

첫째, 유아세례를 인정함으로써 침례에 의한 중생 교리를 지지하고 말았다. 마음을 다하여 침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행 8:37, 이 구절은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성서들에는 삭제되어 있음)이 성경적 교리인데도 불구하고 선악간의 구별도 하지 못하여 믿음을 행사할 수 없는 유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택함받은 자의 표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개혁자들은 침례가 곧 중생이라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거짓 교리를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다. 심지어 개혁주의자들은 그들이 내세우는 언약신학에서 구약의 할례가 신약의 유아세례로 대체되었다고 함으로써 예정론을 옹호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에 의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외쳤던 마틴 루터마저도 이 유아세례의 누룩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개신 교단의 헌법에는 세례가 죄씻음과 연관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이외에 죄인들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계 1:5). 베드로전서 3:21에도 침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일 뿐이라고 정의내려져 있다.

그런데도 물뿌림이 죄씻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로마 카톨릭이 집어넣은 맹독성 누룩에서 개혁자들이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둘째, 개혁자들이 로마 카톨릭의 치명적인 누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은 이들 역시 국가교회를 세웠다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돌아오셔서 천년왕국을 통치하시기까지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카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명히 구분하셨다. 그런데도 콘스탄틴이 국가교회를 세운 이래 로마 카톨릭에 의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국가교회가 개혁자들에 의해서도 버젓이 세워지고 말았다(독일 스웨덴 등지의 루터 교회, 스코틀랜드 화란 등지의 개혁교회, 혹은 장로교회, 칼빈에 의한 스위스 제네바의 신정통치, 영국의 성공회 등).

교회사를 통해 볼 때 루터, 칼빈, 쯔빙글리 등은 정치적, 종교적 대적들을 다루는데 있어 믿음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다(롬 1:17). 그들 모두 정부의 주도 하에 군대의 보호를 받음으로써 "징세"를 면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없이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국가 교회의 회원이 되는 제도하에서는 믿지 않는 자들과의 성별이 있을 수 없게 되며(고전 6장) 이로써 교회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은 국가와 종교와의 엄격한 분리라는 침례교 원칙에 입각하여 세워진 역사상 유일한 나라로서, 종교의 자유는 물론 교회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던 모범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유아세례와 국가교회라는 두 가지 사악한 교리는 시프리안과 어거스틴이 심어놓은 것으로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를 완전히 내버리지 못한 성도들의 삶에 늘쌍 썩은 열매를 맺어오고 있다. 반면 노바티안, 도나티스트, 폴리시안, 보고밀, 알비겐스, 왈덴시안들을 선조로 두고 있었던 침례교도들은 로마 카톨릭과의 단절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믿음을 고백하는 성인들에 대한 침수에 의한 침례와 교회와 국가의 엄격한 분리라고 하는 독립침례교회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침례교도들과 재침례교도들에 가해진 가혹행위(칼빈은 세르베투스가 자신의 교리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그를 화형에 처하도록 했다. 쯔빙글리 역시 칼빈에 동조했다.), 농민혁명 및 과격한 폭동 등과 같이 성경적으로 합당하지 못한 부작용들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5. 맺는 말

루터와 칼빈으로 대변되는 종교개혁은 많은 사람이 지적한 대로 아무것도 개혁하지 못한 채 혁명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이나 성경에 의해서도 개혁되지 못했으며 끊임없는 개혁의 요구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의 "업적"은 신약교회를 초대 교회의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켰다던가 이 교회로 영적 기능을 다하도록 만들었다기 보다는 올바른 성경의 선택과(루터, 칼빈, 쯔빙글리, 베자 등을 비롯한 모든 개혁자들은 카톨릭 성서를 버리고 표준원문을 택하는 분별력을 갖고 있었다.) 이 성경을 읽고 사용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성경공부를 활성화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종교개혁이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업적은 로마 교회를 분열시켜 국가교회를 만든 것도 아니고 성도들의 제사장 직분을 강조한 것도 아니고 공공교육과 자본주의를 고무시킨 것도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 모두가 종교개혁의 성과임은 물론이다.).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신약 지역교회들이 전세계적으로 표준원문을 사용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과 더불어 사탄의 신부가 쓰던 성서는 전세계적으로 내팽개쳐졌다. 이 부패한 성서가 버려지자 암흑시대는 끝났고 참된 그리스도의 신부(솔 6:9)는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창 1:18).

안타까운 일은 하나님께서 되찾아 주신 그 성경이 오늘날 개혁자들의 후손들에 의해 다시 내팽겨쳐지고 그 대신 개혁자들이 내던졌던 그 부패한 "이혼증서"가 다시 그들의 손에 들려져 있다는 것이다(한글개역성경,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서, 공동번역, NIV, NASV, Living Bible을 비롯한 모든 성서들).

종교개혁의 후손들이여!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말씀을 공부하여(딤후 2:15) 부끄럽지 않은 일꾼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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