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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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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 Ⅱ

4. 도나티스트

마귀의 하수인인 콘스탄틴이 나오기 전의 황제는 디오클레시안(284-313)이었다. 그는 "마니키안"이라고 불리는 그룹에 대한 위협으로 그의 통치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기 군사 모두에게 국가 종교가 섬기는 신들에게 제사지낼 것을 명하는 칙령을 내리는 데까지 나와갔다.

이 명령은 A.D. 303년 모든 지역 교회 목사들을 투옥하고, 모든 교회 건물들을 쓸어버리며, 모든 성경 필사본을 다 태우라는 칙령 직후에 내려졌다. 이때 성경을 이 독재자에게 넘겨준 자들은 "배반자"로 불리게 되었고, 이 일로 지역 교회에서는 또다른 분리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 분리한 자들이 역사가들에 의해 "도나티스트"(Donatists)라고 불리는 그룹들이다. 이들은 후대의 폴리시안, 알비겐스, 그리고 왈덴스와 관련이 있다.

도나티스트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들이 로마 카톨릭 교회가 유아 세례를 받아들였을 때 그 어떤 형태의 유아 세례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실행인, 어린 아이를 물에 담그거나, 물을 뿌리거나, 군인들의 머리 위에 젖은 나뭇가지를 흔드는 식으로 침례를 주고 있던 모든 의식을 거부하고 어른이 된 믿는 자들에게만 침례를 주었다. 침례에 의한 중생과 유아 세례는 배교자들이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이미 카톨릭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거하기 위해 전통으로 수립해 놓았었다.

도나티스트라고 불리던 그룹은 (몬텐스라고도 불렀음)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이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선언하기 위해 누미디아 공회(A.D. 415)를 소집하기 전에 어른들을 "재침례"주었다고 해서 죽임을 당했다. 도나티스트들이 재침례를 주었다는 것은 첫 번째 침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온 세계에 선포하는 것이므로 어거스틴이 "유아"세례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오직 참된 침례는 카톨릭 교회가 주는 물침례이며 그 이외의 모든 침례는 이단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재침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카톨릭 교회의 물침례는 사람을 거듭나게 하지도 못하고 새로운 출생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선포하는 셈이 된다. 결국 카톨릭 교회는 갖난 아기가 태어나자 마자 물을 뿌림으로써 후일 아무도 이 아이를 "재침례"주지 못하도록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 거짓 교리를 확립하기 위해 어거스틴은 유아세례는 성경적일 뿐 아니라, 유아세례를 받은 어른을 다시 침례 주면 이단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A.D. 314년 카톨릭들은 태양 숭배자 콘스탄틴으로 하여금 카톨릭과 도나티스트들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이 순간부터 기독교에 베풀었던 콘스탄틴의 "관용"은 급작스레 사라져버렸다. 콘스탄틴은 즉시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침례에 의한 중생은 마귀의 교리라고 주장하는 도나티스트들에 의해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결국 콘스탄틴은 훌륭하신 여타의 기독교 황제들처럼 유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도나티스트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콘스탄틴은 도나티스트들을 사형에 처했으나, 그는 카톨릭 측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지상에 살았던 가장 위대한 도덕가"를 본받아(유세비우스가 '콘스탄틴의 생애'에서 내린 찬사) 441년 공회에서 누미디아 멜라의 주교였던 옵타우스는 도나티스트를 비난하는 책을 썼고 A.D. 377년에는 그라티안 황제가 도나티스트들로 공적, 사적모임을 갖지 못하도록 금하면서 이들의 교회들을 빼앗어버렸다.

카르타고에서 열린 공회(411)에서는 286명의 카톨릭 대표가 279명의 도나티스트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도나티스트들의 패배의 주요원인은 어거스틴이 영향력을 행사했던 때문이요, 그가 쓴 <신국> 등과 같은 책에 나오는 "애매한 용어들" 때문이었다. 도나티스트들은 만약 어떤 카톨릭교도를 재침례주다가 발각되면 즉시 사형에 처할 것임을 경고받았다. 다시 말하면 유아세례 혹은 카톨릭 침례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적극적인 박해가 콘스탄틴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니케아 공회(A.D. 325)이후 확산되었다.

5. 마니키안과 폴리시안

니케아 공회 이후 대부분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그 그룹의 지도자의 이름을 따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아리안"이나 "마니키안"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 시대에(500-1000)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친 사람들은 "카톨릭" 혹은 로마 카톨릭 혹은 그리스 정교회라고 불려본 적이 없다. 이들은 폴리시안, 불가리안, 파테린, 부르군디안, 보고밀, 아르메니안, 카타리 등등으로 불렸다.

이들의 신학적인 지식의 부족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리고 신약성경의 모든 교리들을 다루는데 있어 얼마나 서툴렀든지 간에 이들은 두 가지 사항은 결코 실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코 유아에게 물을 뿌리지 않았으며, 성인의 경우 거듭남을 체험했다는 고백이 있을 때까지 침례를 주지 않았다. 그들은 "침례교도"로 불릴 수도 있는데 이는 바로 이 두 가지 사항이 침례교도들이 물침례에 관해서 믿고 있는 독특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만약 "침례교도"(Baptist)가 어린 아이는 침례주지 않고 어른의 경우 구원받을 때까지는 침례주지 않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한다면 암흑시대의 가장 유명한 복음적 그룹인 왈덴스는 침례교도들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두 가지 사항이 그들이 믿고 실행했던 바였기 때문이다.

폴리시안은 처음부터 모든 선한 카톨릭에 의해 이단종파로 분류되었다. 이들을 금지시킬 목적으로 이들은 유명한 이단이었던 "마니키안"과 연관된 것으로 꾸며졌다. 마니키안은 마네스(혹은 마니)라고 하는 페르시아인이 A.D. 270년 경 페르시아에 세운 이단 종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마니키안에 대한 반대는 마니가 영지주의자들이나 카톨릭보다 창세기 1:2에 더 정확한 해석을 하였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마니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적하는 사탄적 세력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카톨릭 역사가들은 이 주장이 "이원론"을 믿는 영지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모든 카톨릭 교황, 대주교, 사제, 수도승, 수녀, 추기경 및 대통령들은 사탄이 이 땅 위에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사상을 거부한다. 이 사실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원론자가 되는 것이다.

몬타누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니는 자신이 요한복음 14-16에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위로자"라고 주장했다고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그는 결코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역사가들은 성령께서는 오직 자신들의 교회를 통해서만 말씀하신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카톨릭 교회의 회원이 아닌 그 누군가가 성경적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면 그는 "자기가 성령이라고 말한" 셈이 된다.

마니는 자신 안에 계신 위로자께서 자기를 통해 말씀하셨다고 말했을 뿐이다. 마니의 적들이 쓴 글들을 받아들인다면 마니가 구약 성경에 대해 취한 태도는 완전히 불신자의 자세일 것이다. 마니는 275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죄목은 선과 악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와, 아담 이전의 역사에 대해 갖고 있던 철학적 주장이 이단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신구약 성경이 영감을 받았고, 그리스도는 처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신의 모양을 입은 하나님이시며, 죽었다가 장사되었고 다시 사셨다는 사실을 믿었다.

전통주의자들이 마니의 가르침에 반대한 진짜 이유는 훨씬 간단하다. 그의 추종자들은 4세기나 5세기 동안 카톨릭 신앙을 조롱하고 "카톨릭 교도"들의 반성경적 실행들을 조롱한 사람들로 명성을 얻었다. 따라서 카톨릭은 폴리시안 역시 "반카톨릭"이었으므로 이들을 약탈하고 살해할 목적으로 마니키안과 연관이 있다고 몰아붙였던 것이다.

교회사가 필립 샤프는 마니키안을 "과격하고, 이단적인 종파"로 분류한다. 이들은 로마 카톨릭과는 반대로 바울 서신을 강조한다고 해서 "폴리시안"(바울파)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카톨릭 교회는 한 번도 바울 서신을 강조하지 않았다. 폴리시안은 한 마디로 오리겐, 시프리안, 클레멘트, 파피아스, 유세비우스, 제롬, 혹은 어거스틴보다 신약성경의 핵심을 훨씬 잘 파악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샤프가 "이단종파"라고 부르는 이 그룹의 창시자는 A.D. 684년 그리스 황제 콘스탄틴 포고나우츠(668-685)의 명령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다. 이 "이단종파"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쉽게 그 출처를 찾아낼 수 있는 시리아에서 유래되었고, 소아시아를 거쳐 퍼져나갔다. 정통주의자 데오도라는 십여만 명의 폴리시안을 칼과, 밧줄과, 화형으로 죽였다. 폴리시안 회중들은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정치적으로는 사라센과 동맹을 맺었다(종교적으로는 아니었다). 비잔틴 제국은 이 당시(A.D. 867) 우상을 섬기는 배교자였던 그리스 카톨릭(Greek Catholics)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카톨릭 교회사가들은 이들 "극단적인 이단들"은 "이원론"을 가르쳤고,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가르쳤으며, 기독교보다는 유대교를 가르쳤고, 시몬 베드로를 거짓 선지자라고 여겼다고 그의 교회사에 기록했다.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폴리시안은 두 가지 이유로 "이단"으로 분류된 것이다. 폴리시안은 카톨릭 교회의 수장을 거짓 선지자(사탄)라고 불렀다. 폴리시안에 대한 공격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15세기에 걸친 중상모략의 전형적인 예이다.

폴리시안들은 카톨릭 교회의 성직제도를 거부했고, 성체성사도 거부했고, 유품과 십자가 숭배도 거부했고, 에베소서 4:5의 "하나의 침례"는 성령께서 믿는 자를 그리스도 안으로 넣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폴리시안의 최악의 상태마저도 당시를 지배하던 교회의 그 어떤 주교나 대주교 보다 최소한 다섯배 이상은 성경적이었다. 심한 박해를 받게된 폴리시안들은 불가리아와 발칸 지역의 산악지대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이탈리아 북부와 유고슬라비아로 가서 왈덴스와 알비겐스로 불리우는 그리스도인들을 낳게 된다.

"마니키안"으로 몰린 사람들은 로마의 "기독교 정책"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뿌리뽑히지 않았다. 그들은 이탈리아 북부(파테린과 왈덴스의 본고장)와 프랑스 남부(보도와 알비겐스의 본고장)에서 비밀리에 성경을 가르쳤고 복음을 전파했다. 폴리시안은 한 때(A.D. 560) 마니키안이었던 콘스탄틴이라고 불리우는 어떤 사람의 회심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구령하는 어떤 전도자가 그에게 복음서와 사도 바울의 서신을 담고 있는 신약성경의 필사본을 하나 건네주었다. 물론 이 필사본은 제롬이 사용한 알렉산드리아 계열이 아니고 시리아의 비잔틴 계열 필사본이었다. 이 성경 출판으로 이 감독은 황제 유스틴(483-565)에 의해 "마니키안"으로 몰려 트레이스로 추방되었다가 그곳에서 그리스 정교회 교도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6. 왈덴스

스페인 북부(피레네 산맥지대)에 있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후일 왈덴스로 신원이 밝혀졌다. 스페인을 떠나 피레네 산맥을 넘었던 그리스도인들은 프랑스 남부에 정착했을 때 "보도"라고 불렸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로 거리에서 설교했던 그룹들 중 유명한 그룹은 왈덴스였다. 이들은 카톨릭 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살았다.

이들은 소아시아에서부터 프랑스 남부로 넘어온 그리스도인들로 중세에 있어 정확하게 성경적인 기독교를 실행한 그룹이었다. 그곳으로부터 이들 그룹은 페이드몽, 오스트리아, 그리고 독일로 퍼져나갔다. 이들의 호칭은 피터 왈더스(Peter Waldus)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산달라티"(Sandalati) 혹은 "리용의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불렸다. 다른 학자들은 왈덴스(골짜기에 거주하는 자들)이란 명칭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그리고 스페인어로 골짜기라는 단어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왈덴스들은 제 3차 라테란 공회(1179년)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교황 알렉산더 3세에게 거리에서 설교하도록 허락할 것을 요구했고 그들이 올드 라틴 역본에서 번역한 성경을 교황에게 하나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거리에서 설교하는 것이 금지당했고 공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후일 그들의 성경들은 불태워졌고 80여 명의 설교자들이 스트라스부르그(1212)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이들은 오스트리아, 스와비아, 쾨닉스버그, 폴란드, 바바리아, 보헤미아, 그리고 파소 등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은 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 있어 최종권위로 생각했기 때문에 성경의 배포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교황, 추기경, 주교, 사제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거부하면 이들은 이들 종교인들을 무시해 버렸다. 왈덴스의 믿음에 따르면 평신도도 성경을 설교할 수 있으며 그 어떤 평신도도 믿음을 고백하는 어른에게 침례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유아에게는 침례를 주지 않았다. 이외에도 이들은 믿는 자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속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믿었다.

한마디로 이들은 루터와 칼빈이 태어나기 300여 년 이전에 유럽 전역에 걸쳐 역사하고 있던 성경대로 믿는 침례교인이었던 것이다.

왈덴스들은 모든 카타리와 마찬가지로 로마 카톨릭 교회가 계시록 17장에 나오는 바빌론의 창녀라고 선포했다. 성 프란시스와 도미니크 그리고 베르나르드가 가르쳤거나 모방했던 실제적인 기독교 진리들은 전부 왈덴스로부터 배운 것이지 자신들이 속했던 카톨릭 지도자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었다. 이들 수도승들은 왈덴스들의 기독교적 실행(즉 가난하게 사는 것과 가난을 선택하는 것)을 모방함으로써 많은 방랑자들을 다시 바빌론의 창녀의 품 안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왈덴스들은 36차례의 박해를 통과해야 했다. 그 중 가장 극심했던 것은 1208년에 있었던 몽포르드시몬의 십자군 원정 때였다.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왈덴스들을 "삼손의 여우들"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다른 곳에서 나타났지만 모두 함께 묶어 태워죽였다. 왈덴스들은 겨울에 집에서 쫓겨나 산꼭대기로 내몰렸고 황막한 숲 속으로 내몰려 그곳에서 굶어 죽거나 얼어죽었다. "경건한" 도미니칸들은 자신들의 멸망을 스스로 자초했는데 "도미니, 칸네스"(라틴어로 주님의 개들)라고 불렸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높은 절벽에서 내던져져 산산조각이 났으며 어떤 이들은 동굴로 쫓겨갔고 이 동굴의 입구를 장작불로 태워 연기에 질식시켜 죽였다.

비틀거리는 노인들과, 어린이, 유아들은 목매달아 죽였고, 찢여 죽였으며 창자를 꺼내기도 했고, 쇠스랑으로 찔러 죽였고, 물에 빠뜨려 죽였으며, 갈기갈기 찢어 죽였고 칼로 찔러 죽였고, 개가 물어 뜯게 하여 죽였으며,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이것은 어거스틴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하여 갖고 있던 긍정적인 견해가 낳은 당연하고도 예건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사악한 카톨릭 배교자들이 왈덴스, 카타리, 보고마일 등에게 품었던 불타는 증오심은 이들 성경대로 믿는 그룹들이 외친 부정적인 설교 때문이었다. 모든 성경적 설교는 로마 카톨릭에 관한 한 100%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성경에서 이집트나 로마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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