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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온전하게 인도하신 스코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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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온전하게 인도하신 스코필드

한 때 법률가였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스코필드, 그는 <스코필드 관주성경>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 성경은 수십만 성도들뿐만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 성경은 그가 구원받은 지 30년 후의 역작으로서 주님께서 전적으로 도와주셨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스코필드의 어머니는 이 아이기 태어나면 설교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녀는 그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스코필드는 어린 시절 내내 미시건 레나이 지역에 있다가 그후 가족들과 함께 테네시 레바논으로 이사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감독교인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읽어주었고, 또한 그가 자발적으로 성경을 읽게끔 도와주셨다.

어린 그는 자연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알려는 열정이 있었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의 나이 17세, 그는 남북전쟁으로 인해 그가 가려던 버지니아 대학교를 포기하고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는 18번 이상의 크고 작은 전쟁에 참가하였고, 그로 인해 상을 받는 적도 있었다.

스코필드는 법률을 공부하여 1869년에는 켄사스에 있는 변호사단을 승인받았고, 1872년에는 캔사스에서 주 의회에 입당하게 되었으며, 이듬 해에는 그당시 인디안 영토(대부분 오클라호마)를 포함한 켄사스의 변호 대변인이 되었다. 이로써 그는 당대 미국에서 가장 나이 어린 변호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정치적 충돌과 마찰로 그는 켄사스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1879년에는 세인트 루이스로 돌아와 그곳에서 다시 개업을 하고, 여가생활로 미주리와 캔사스를 왔다갔다 하며 여행을 했는데, 그때부터 그는 상습적으로 술을 먹기 시작했다. 성경도 읽긴 했지만 연구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저 역사 이야기를 다룬 책이거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그의 친구 중에는 YMCA에 다니고 있는 맥 휘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사무실로 놀러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래 전부터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여태껏 두려워서 하지 못했네. 그러나 지금은 꼭 물어봐야겠네, 친구." "자네가 두려운 것도 있나? 그래, 그것이 뭔가?" 맥 휘터스는 이어서 물었다. "자네는 왜 아직도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하늘나라에는 나 같은 술주정뱅이가 설 자리가 없지 않은가? 자네가 알듯이 나는 술없이는 못사네."

그러나 맥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자네는 아직도 내가 물은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으니 다시 묻겠네. 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거부하는건가?"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감독교인이야.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네." 맥 휘터스는 그의 대답을 듣고 걸상을 가져와 포켓성경을 펴 들어 한 구절 한 구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네의 구세주로 영접하겠나?" "한 번 생각해 보겠네." "아니, 자네는 지금껏 살면서도 모르겠나? 지금 결정하게나, 지금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야 하네."

스코필드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그 둘은 즉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고, 그 순간이 바로 36세의 나이로 새 생명을 얻은 스코필드의 기적같은 삶이 시작되는 때였던 것이다. 그가 찰리 트럼블에게 쓰라고 준 자서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성경적 회심이었습니다. 맥 휘터스는 그의 낡은 포켓 성경으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해 나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3:16; 6:48; 10:28, 사도행전 13:38-39 등을 읽어 주었을 때 나는 빌립보의 간수처럼 '내가 구원받으려면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물어 보았고, 그는 그저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었습니다. 나는 그때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였고, 순간 나의 죄사슬은 풀리고, 다시는 나를 얽어매지 않았습니다. 술을 먹고 싶은 욕망도 사라졌습니다. '순간'이라는 말을 빼지 마십시오. 강조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그는 술먹는 욕망을 떨쳐내고 승리하게 되었다.'라고는 쓰지 마십시오. 그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온전히 하신 일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맥 휘터스는 스코필드를 즉시 YMCA로 데려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교제하게 도와 주었다. 그후 스코필드는 전천년주의자이자 세대주의자이며 성경을 가르치는 장로교 목사인 제임스 브룩스에게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는 "구원은 성경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며, 절대로 체험이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가르쳤다. 스코필드가 감명받은 사람 중에 또 한 사람이 바로 C.E. 팍슨이다. 그는 새로 산 성경에 무슨 표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관주의 시작이었다. 스코필드 역시 그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철도직을 겸하면서 지역 회중교회를 돌아다니며 일하게 되었는데, 한 회중교회에서는 스코필드의 하는 일들을 주목하였고, 마침내 그에게 달라스에 있는 제일 회중교회의 목사직을 맡기게 되었다. 1882년 드디어 스코필드는 법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어머니의 39년 전 기도가 응답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한 명의 형제와 열한 명의 자매들로 모임을 시작했다. 곧 그는 그들의 남편들을 주님께로 인도했고, 신학교를 가는 대신에 그전 제임스 부룩스에게서 배운 것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1883년 10월 17일에는 드디어 회중교회에서 안수받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결혼생활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1881년 7월 23일 그의 아내가 이혼서류를 내민 것이다. 그가 주님께로 강력하게 헌신한 이후 그의 아내는 그들의 사이를 끝낼 것을 독촉하여 2년 후 그들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스코필드의 회심 후 2년 동안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는데, 그의 아내는 그들이 이혼한 사유를 "나는 그 이의 변한 생활방식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스코필드는 1883년부터 1907년까지 달라스교회에서 두 차례에 걸쳐 사역을 담당했으며, 1908년에는 비로소 독립교회로 나왔고, 1922년에는 스코필드 기념교회라고 교회명칭을 바꾸었다. 2년 만에 12명의 작은 교회에서 200명의 교회로 된 것이다.

그당시 주목할 만한 그의 일은 그의 첫 번째 저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1888)라는 책과 <달라스의 중앙 아메리카 선교 구조, Formation of the Central American Mission of Dallas>(1890년 11월 14일)라는 책을 쓴 것이다. 그리고 중국 사역의 설립자이자 감독자인 허드슨 테일러와의 많은 만남으로 그는 하찮게 여겼던 미국 선교사업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몇 명의 성도들과 함께 선교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곧 그 해 선교비로 책정된 예산을 초과한 금액으로 선교사업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성경통신과정을 시작했는데, 한때는 7천 명이 넘는 학생이 등록한 때도 있었다.

1895년 무디의 권유로 메사추세츠 북동쪽에 있는 교회에 목사로 갔을 때 스코필드에게 또 다른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그는 7년 간 그곳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농사를 짓는 그 지역 사람들과 수천 명이 넘는 고등학생들에게 설교했는데, 196명의 회심자들이 교회에 붙여졌고, 112명의 다른 교회성도들이 그 교회로 모이게 되었다. 1899년 무디가 생을 마감할 때도 스코필드의 설교로 장례식을 치렀다.

그가 성경 훈련학교에 학장으로 있었을 당시 다른 이들과 함께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씨 클리프 성경모임을 결성하였는데, 그때가 첫모임으로서 1901년 7월 23-29일에 열렸다. 그때 그는 게벨라인과 함께 성경 주석서를 만드는 것에 심취해 있었는데, 단순히 주석을 다는 것보다는 참고구절, 요약, 도입, 부제목 등을 첨가시키는 것을 원했다.

이 작업은 반대자들의 반대에 부딪쳐 완성되지 못했지만, 1902년 달라스로 돌아왔을 때, 그의 성도들은 그가 계속 주석서를 펼 수 있도록 허락하였고, 그는 1902년부터 1909년 동안 주석서를 펴내는 데 열중했다. 7년 동안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며 주석서를 펴냈다. "내 자신이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했을 때, 말씀을 공부하려는 그 기본적인 원리를 배제한 채 어떤 주석서가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가?"

여러 가지 방해에도 불구하고, 1907년 그의 책은 완성되었고, 1909년 1월 15일 드디어 주석성경이 성도들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그의 저서에는 유명한 <스코필드 관주성경>과 스코필드 통신과정이 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책,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예언의 위치>, <성령론>, <신구약 성경공부> 등의 주옥 같은 책이 많다. 비록 그의 설교 자료를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근본주의자가 된 적은 없었다. 1908년에는 자유주의 물결에 의해 그 회중교회에서 물러났고, 뉴욕시로 가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1914년에 그는 루이스 쉐퍼, 윌리엄 페팅길과 함께 필라델피아 성경신학원을 만들어 1918년까지 학장으로 지냈다.

1921년 5월 22일, 그는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두 달 뒤 집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생애에 잊지 못할 순간이 두 번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성경에 대해 인간적인 가르침을 그만두고 성경 자체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을 때요, 두 번째는 승리자이신 그리스도와 그가 하신 일을 알았을 때였다는 것이다.

수백만 명의 많은 사람들이 스코필드가 쓴 주석성경으로 인하여 더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성경 학자들이 그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또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주석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1954년부터 9년 동안 아홉 명의 위원들이 모여 스코필드 주석성경을 다시 편집하게 되었고, 쉴러 잉글리쉬 아래 그 일이 마무리되어 1967년에는 <뉴 스코필드 관주성경>이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 왕성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사탄의 방해였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주석성경은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성경>을 배격하고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스코필드가 그렇게 높여 드렸던 하나님의 말씀은 이 새로운 책에서 무너져 버린 것이다. 이는 스코필드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었다.

36세의 나이에 구원받고, 제대로 된 신학공부도 하지 못한 그가 지금도 성도들의 마음 속에 위대한 믿음의 선조로서 무엇을 했는지 보라. 그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지 않으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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