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 바른성경공부 :::
   바른 성경 공부
   성경의 복음
   피흘린 발자취
   반석 위에 선 교회



분류 반카톨릭사 | 폭스의 순교사 | 믿음의 선배들 |
그리스도의 고난을 육신에 채운 복음의 일꾼, 저드슨
 관리자    | HIT : 3,740 |
그리스도의 고난을 육신에 채운 복음의 일꾼, 저드슨

존경하는 저드슨 목사님 귀하,

저는 선교를 열망하는 신학생으로서 목사님에 관한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드리게 된 것은 우선은 그 책으로 인해 도전받기보다는 열병을 앓듯 많은 고민과 번민을 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한 번 제 자신을 주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할 수 있도록 내어드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책을 읽어가면서 목사님과 저의 환경이 비슷했기에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1788년 메사추세츠 맬던에서 회중교회 목사의 자녀로 태어나셨고, 브라운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셨다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무신론자가 되셔서 졸업 후에는 자유로운(?) 삶을 향해 뉴욕까지, 또 거기서 서부로 향하셨지요. 그러나 그 도상의 한 여인숙에서, 한때 목사님을 무신론으로 이끌었던 친구의 비참한 죽음을 접하고는, 인생의 행로를 바꾸어 신학교에 입학하셨고, 1808년 12월 구원받으셨더군요.

저도 소위 '모태신앙'인이며, 제 아버님도 목사님이십니다. 저도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제 믿음(?)은 송두리째 흔들렸고, 인생의 패배자나 용기 없는 사람들이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절대자에 대한 신앙을 갖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구원받기 전까지 하나님 없이 그렇게 삶을 낭비했습니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가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침례교 교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우여곡절 끝에 미국 최초의 외국 선교사로서 회중교회의 후원을 받아 떠나셨지만 막상 5개월이나 항해한 뒤 선교지에 도착해서는 회중교회 선교회측에 그들의 교리를 지지하지 않음을 알리셨고, 침례교측에 자신을 후원해 줄 것을 요청하셨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저도 침례에 관해서 성경을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교지에 아무런 도움이 없이 남겨지는 것을 감수하시면서 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펼쳐보면서 침례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깨달을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목사님의 사역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의 외침 앞에 아무런 보장도 없이 이제 막 선교지에 도착한 선교사가 스스로 보급선을 끊을 수 있을만큼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가 소중했기에, 목사님 평생의 사역 즉 23년이나 걸려 버마어 성경을 번역하실 수 있으셨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저에게 심각한 고민을 제기했던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미국을 떠난 5개월 후 캘커타에 도착했지만 영국 동인도 회사가 본국으로 떠날 것을 명령했기 때문에 여러 섬들을 전전하다가, 결국 마드레스에서 2주안에 떠나라는 명령을 다시 받게 되면서 그 기한 내에 떠나는 유일한 배의 목적지가 목사님의 선교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선교를 위해 버마에 도착하기까지 1년 6개월 이상 아무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셨습니다.

그 뒤에도 어려움은 줄곧 끊이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자유롭게 전하기 위하여, 개종한 버마 사람들의 안전을 위하여, 강력한 독재자이며 불교도인 왕의 허락을 얻고자 두 번이나 이라와디 강을 여행했으나 허사였습니다. 그 뒤 의사인 프라이스 선교사로 인해 왕의 호의를 얻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지만 아내 앤을 데리고 오는 사이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로 내각이 전부 바뀌어지기도 했습니다.

버마가 영국이 시작한 전쟁에서 패하자, 수도에 있던 목사님은 영국 은행으로부터 돈을 얻어쓰는 스파이로 몰리셨습니다. 매일 산뜻한 내의로 갈아입고, 서류 뭉치와 책을 질서 정연하게 정리하시던 목사님께서 엉겨붙은 더러운 오물 위에서 반쯤 벌거벗은 채 땀을 흘리며 악취를 풍기는 다른 죄수들과 함께, 죽음의 감옥으로 상징되는 렛 다 윤(손이 오그라져서 펴지지 않는 곳)에서 21개월을, 다시 아웅 비넬의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갇혀 있으면서 죽음의 위협들과 싸우셨습니다.

어디 이것 뿐이었습니까?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 한 명 없이 4년이란 세월을 인내하셨고, 버마에 도착한지 만 6년이란 세월만에 단 한 명의 회심자를 얻을 때까지 계속 일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루에 거의 15시간씩,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는 끝없는 단어들과 매일 숙어가 변하는 버마어를 마른 야자나무 앞에 휘갈겨 쓰며 공부한 지 약 1년 후에는 머리를 단창으로 찌르는 것같은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육신의 고통보다도 선교를 시작도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중지시키시는 것은 아닌가하고 방황하셨더군요. 후에는 폐가 나빠져서 인후염이 왔고 그로 인해 목소리를 자유롭게 쓸 수 없었기에 목사님이 목이 터져라 전하고자 했던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될까봐 안타까와 하시지 않았습니까?

첫 번째 아이는 버마에 도착하기 전 배 안에서 죽었고, 다음 해에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으나 버마의 습한 기후가 천천히 그 사내아이의 건강을 좀먹어 그 아이도 죽었지요. 목사님께서 낯설고 힘든 곳으로 떠나려는 무일푼의 선교사 지망생임을 알고도 선뜻 따라나서, 목사님과 숱한 어려움을 함께 했을 뿐 아니라 감옥까지 따라다니며, 목사님이 번역하신 버마어 성경 원고를 용감하게 지켜냈던 사랑하는 아내, 열병과 이질 속에서도 잘 견디어 주었던 앤마저도 목사님이 감옥에서 나온 뒤 죽었습니다. 그 6개월 뒤 셋째 딸도 죽었구요.

13년이나 분투해서 랭구운에서 18명으로 세운 교회도 2년 동안의 감옥 생활과 전쟁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것은 겨우 4명의 회심자뿐이라니요!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셨습니다.

사실 목사님은 신학교 졸업 당시 모교인 브라운 대학에서 강사 자리를 약속받았었습니다. 그리핀 박사는 보스턴에서 제일 크고 부유한 교회에서 같이 일하자고 초청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문화 환경이 갖추어진 곳에서 편안한 생활을 누리면서도 훌륭한 교회를 개척하실 수도 있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동창들이 뉴잉글랜드에 교회를 세워 시원하고 건강에 좋은 뉴잉글랜드 기후에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을 동안 목사님에게는 그런 고난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의 생애는 저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가면서, 심지어 모국어로 말하는 것조차 잊어버리면서까지 계속해서 끈질기게 버마어 성경을 번역하고, 죽어가는 버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그 수고를 어떻게 중단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또 목사님을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신 주님께서는 평안한 삶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헌신한 목사님의 생애에 왜 그런 고난들을 왜 허락하셨는지..., 무엇보다, 복음을 들고 나가고자 하는 나에게 이런 일들이 주어진다면 나는 계속해서 그 길을 갈 것인지...

계속해서 저는 목사님의 두 번째 부인 사라의 죽음에 대한 부분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라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 미국행을 결정했지만 미국에 도착하기도 전 목사님께서는 부인의 죽음을 직감하셨습니다. 남편과 함께 버마로 와서 야만스럽고 무지한 정글지대의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남편을 잃고, 본국의 송환도 거부한 채 어린 아들과 함께 정글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여인, 그후 목사님과 함께 버마어 성경을 완성하는 일과, 복음을 전하여 교회들을 세우는 일을 함께 해온 동역자, 그러나 이제 건강을 잃어 주님의 부름에 응하려는 그녀에게 물었던 목사님의 맨 처음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구세주를 사랑하오?"

목사님의 질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포함하고 있는 듯 들렸습니다. '그렇게 많은 고난 후에도, 그리고 이제 그분을 섬기다 이 낯선 땅에서 죽어가면서까지도 말이오?'

이 부분에서 저는 비로소 제 앞에 있을지도 모를 고난에 대한 두려움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에 대한 열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잇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어떤 안락도 마다한 채 "인생은 짧다. 수많은 버마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구원을 전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습득한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복음의 일꾼으로서 버마의 복음화를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들을 육신에 채울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목사님에 관한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선교의 열망을 가졌던 저로서는 제 자신에 대해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시에 복음의 일꾼으로서 지금 저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주님께서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으로 저를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기에 제가 해 오던 준비들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이곳, 언어를 따로 익히지 않아도 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성경을 번역해야 할 막중한 부담도 없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나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목숨이 위태롭지 않은 바로 이곳에서 복음을 위해 신실하게 수고할 수 없다면, 다른 땅, 다른 언어, 다른 민족에게 가서 숱한 고난들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저에게 명백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먼저 바로 이 땅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애썼던 목사님처럼, 이 땅을 선교지로 삼아 복음의 일꾼으로 살고자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55 믿음의 선배들   놀라운 부흥의 도구, 피니  관리자 03·07·09 3837
54 믿음의 선배들   크게 쓰인 작은 그릇, 무디  관리자 03·07·09 3822
믿음의 선배들   그리스도의 고난을 육신에 채운 복음의 일꾼, 저드슨  관리자 03·07·09 3740
52 믿음의 선배들   사탄의 왕국을 뒤흔든 그리스도의 용사, 요한 웨슬리  관리자 03·07·09 3859
51 믿음의 선배들   아직도 열매 맺는 조지 뮬러의 믿음의 기도  관리자 03·07·09 3869
50 믿음의 선배들   설교의 왕자, 찰스 헤이든 스펄젼  관리자 03·07·09 3133
49 믿음의 선배들   주님께서 온전하게 인도하신 스코필드  관리자 03·07·09 3223
48 믿음의 선배들   끊임없이 도전한 생애, 윌리엄 캐리  관리자 03·07·09 3413
47 믿음의 선배들   공산 치하에서의 믿음의 영웅들과 리차드 움브란트  관리자 03·07·09 3083
46 믿음의 선배들   위대하신 주인의 종, 허드슨 테일러  관리자 03·07·09 2959
45 믿음의 선배들   18세기의 뛰어난 순회 설교자, 조지 휫필드  관리자 03·07·09 3079
44 믿음의 선배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한 사람, 마틴 루터  관리자 03·07·09 3687
43 반카톨릭사   종교 개혁과 참 기독교 신앙 Ⅱ  관리자 03·07·09 3650
42 반카톨릭사   종교 개혁과 참 기독교 신앙 Ⅰ  관리자 03·07·09 3569
41 믿음의 선배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 Ⅲ  관리자 03·07·09 3336
40 믿음의 선배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 Ⅱ  관리자 03·07·09 4124
39 믿음의 선배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 Ⅰ  관리자 03·07·09 3828
38 반카톨릭사   종교 개혁의 역사적 의의와 그 문제점  관리자 03·07·09 7554
37 믿음의 선배들   위대한 "이단들"의 역사 Ⅱ  관리자 03·07·09 3146
36 믿음의 선배들   위대한 "이단들"의 역사 Ⅰ  관리자 03·07·09 3302
1 [2][3]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
 

Copyrightⓒ2003 광주성경침례교회 All Right Reserved.
문의 전화: 062-943-1994 , 010-3623-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