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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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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믿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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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인은 믿음으로

[이 복음 안에는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으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병원이나 약국 같은 곳에서 자주 볼 수있는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재산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어디까지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재산이나 명예나 건강보다 더 귀한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박해받던 초대교회시대에 성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목숨보다, 건강보다 더 귀한 것은 믿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믿는 사람에게서 믿음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농담으로 하는 말 중에 '나는 뭐 빼면 시체다,' 하는 말들을 합니다. (난 의리 빼면 시체다.)
이와 같이 성도에게도 믿음을 빼고 나면 시체나 다름없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요한계시록에서 사데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라 하셨는데 이유는 살아 있는 믿음이 없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이처럼 성도에게 모든 것이라 말할 만큼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믿음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귀하고 소중한 것이 아니라 세상사람들의 경우에도 대단히 귀하고 소중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 것을 입증 할 수 있기라도 하듯이 현대사회를 신용사회라고 합니다. 믿음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용이 자산이다'라는 말까지 생겨났는데 때문에 신뢰를 못 얻는 회사나 개인은 사회에서 자리를 빼앗기고 파산하게 되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사람들도 무엇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물질로 사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풍요해도 못살겠다고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물질 뿐 만이 아니라 지식도 있고, 명예도 있고, 성공도 있다해도 믿음이 없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사람을 믿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삽니까?
만약 믿음이 없다면 이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버스도 택시도, 비행기도 탈 수 없고 하루 세끼 밥도 먹을 수 없습니다.
아내를 못 믿는 남편이 어떻게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또 남편을 못 믿는 아내가 어떻게 남편을 출근시키겠습니까?
이처럼 산다고 하는 자체가 믿는 것인데 믿음이 없다면 살수 가 없는 것이죠!
그러므로 무엇이든 믿지 못하는 불신은 중증에 해당하는 병입니다. 믿음이란 게 얼마나 소중합니까?
오늘 본문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의인이 된 우리는 여전히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을 이론 적으로 설명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믿음이 아닌 것들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볼 때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저런 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주제는 넓기 때문에 오늘 설교를 통해서는 믿음의 관한 중요한 2가지만 설교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대로 설교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믿음!
1.보지 않고 믿는 것!
주님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도마야, 네가 나를 보았으므로 믿는구나.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이제 하나님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주님을 믿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이라는 것은 보는 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 것을 믿으라는 말은 그 차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 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히 11:1)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후4:18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고후 5:7)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꾸만 볼려고 합니다. 보여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지옥과 하늘나라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믿을만한 무언가 표적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주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은사주의자들이나 기도원에서 치유를 보기 원하는 사람들은 다 음란한 사람들이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인데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존재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늘나라와 지옥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있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기록된 말씀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여지는 무엇보다 기록된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변형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듣기도 했던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직접들은 하나님의 음성보다 더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이라고 증거합니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어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 예언의 말씀을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벧후1:19)
때문에 성경을 믿는 우리들은 어디에 하나님이 나타났다고 해도 우린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전에 순천에 사는 모 형제의 부인은 어느 누가 말하기를 '제주도 어디에 하나님이 나타나신다더라' 고 하니까 그 곳에 가려고 사정을 하더랍니다. 가게 해 달라고!}
성경을 믿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또 어디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고 해도 우린 그가 예수님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면 우린 눈 깜짝하는 순간에 주님과 함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고전15:51,52. 살전4:16,17)
마24:5절에서도 주님은 마지막 날들에 많은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와서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속일 것이니 미혹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만 자칭 그리스도가 2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늘나라나 지옥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여주면 믿겠다, 그래서 어떤 성도가 "하나님 그에게 지옥을 보여 주십시오, 그래서 믿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한다면 어리석은 기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다고 해서, 보여준다고 해서,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 보여준다고 해서 다 믿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생각하실 때 보여주면 다 믿을 것 같지요.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옥에 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간청했죠. 나사로를 보내어 자기 형제들에게 만큼은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그 간청에 아브라함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서 듣게 하라."](29절).  
함께 눅16:19-31절 보겠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간 부자는 세상에 남아 있는 다섯 형제를 염려합니다. 어찌하든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죽음 뒤에 실재하는 지옥의 실상을 알지 못한 채 먹고 마시는 일에 정신 없이 살아가고 있는 형제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겼습니다.
그러기에 제발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어주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부자의 생각에는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서 돌아가면 틀림없이 다섯 형제들이 믿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말은 죽은 자가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은 눈으로 보는 것으로 생기지 않고 기록된 말씀을 통해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서 듣게 하라.'고 하시더라. "](29절).
나사로가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그들에게 말씀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부자는 펄쩍 뛰며 아니라고 나사로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서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 더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다시 말하길' [만일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비록 누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다 해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니라'](31절)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은 어떠실 것 같습니까? 죽은 사람들이 부활해서 나타나면 믿을 것 같죠.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재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마27:53절에서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구약 성도들의 몸도 부활하여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부자의 말처럼 그들이 다 믿었습니까? 엄청난 일임이 분명한데도 믿지 않았습니다. 또 구약의 이스라엘은 얼마나 많은 표적과 이적과 기적들을 보았습니까?
엄청난 이적과 기적들을 보았던 그들이었지만 조금만 지나면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계신가?"](출 17:7) 의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떠나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본다고 믿음이 생깁니까? 예수님 당시에는 얼마나 많은 치유와 기적들을 보았습니까? 다 믿었습니까? 어떻게 하면 모함해서 죽일까 공모했습니다. 장님이 눈을 뜨고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온전케 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했는데 그럼에도 주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주님께서 행했던 기적들을 보았던 그들은 다 어디에 있었습니까? 요한과 몇 명의 여인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다고 해서 다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 뭔가 보여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뭔가 보여주시면 제가 한눈팔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살겠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기도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믿음을 보고 "야 저 사람이 믿는 걸 보면 저 사람이 믿는 것은 실재하는 무엇을 믿는 것 같다"하는 말들이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이 믿는 것에 대한 보증수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히 11:1)

2.믿음은 행하는 것!
어찌 보면 믿음과 행위는 상반된 것처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행위는 나뉘어지지 않고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따라옵니다. 행위가 있으면 믿음이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과 행위가 상반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구원과의 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원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냐, 행위로 받는 것이냐? 에 대해 교리적인 구분을 분명히 하다보니 믿음과 행위를 나누어 마치 믿음에는 행위가 없어도 되는 것처럼 잘 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 지금 교회시대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교회시대가 끝나고 환란시대가 오면 믿음에 행위가 있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이처럼 구원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모든 믿음에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믿음이 무엇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그와 같이 행함이 없으면 믿음만으로는 죽은 것이라.](2:17)
[오 허황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인 줄 네가 알고자 하느냐?](2:20)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니라.](2:26)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단지 교리 적으로만 보면서 환란 시대에는 믿음에 행위가 있어야지 돼! 라고 말하면서 믿음에 행위가 없는 것이 믿음인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에는 행위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온전한 '믿음'입니다.(22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고후 5:7)
우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교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자신에게 적용해야 할 말씀조차 외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환란시대에는 믿음에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 것은 어디까지나 구원을 위해서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 시대에는 믿음에 행위가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위가 드러나지 않으면 실재는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앞에 우리의 행위 없는 믿음이 믿음이 없는 것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의 증거는 믿는 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증거는 무엇이겠습니까?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행하지 않습니다.
히11장에 믿음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믿음으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써!!" 믿음의 사람이라고 불립니다.(4절). 에녹도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는데 옮기 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증거를 지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5절)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안을 구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7절)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믿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망치와 톱, 대패를 들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120년 후에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을 할 것이라고! 벧후2:5절에 노아를 의의 전파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면서 "떠났다고" 기록합니다.(8절)
그러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제사를 드렸고, 증거를 보였으며, 방주를 지었고, 길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환란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라 믿음에 행위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믿었기 때문에 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가 없다면 실재는 믿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밖에서 믿음이 무엇인지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광주역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하고, 그래서 여러분은 “오른쪽 길로 가면 됩니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가 오른쪽으로 가면 그 행인은 여러분의 말을 믿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오른쪽 길이 아닐 텐데…”하면서 왼쪽 길로 가면 또는 가지 않고 망설이고 있으면 그 행인은 여러분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믿었다면 말 한대로 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리에서 복음을 전한 뒤에 믿는다고 말을 하면 함께 영접기도하자고 합니다.
그럼 놀라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서요?" "아~ 그것만은 못하겠습니다" 합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하겠습니까?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마음에 믿으면 입으로 시인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믿는데 왜 영접하지 않겠습니까? 말하기는 "내가 안 믿는다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왜 믿는다면 주저하겠습니까?
[똑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하였으니 우리도 역시 믿으므로 말하노라.](고후 4:13)
믿는다면 그 믿음에는 고백이 따르게 되어있고 또한 행위도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있습니까? 성경은 롬 14:22 [네게 믿음이 있느냐?]고 믿는 성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믿는 바에 따라 행동으로 옮기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믿습니까? 믿는데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까? 그럼 누가 여러분이 믿는 다는 것을 인정해 주겠습니까?
행함이 없다는 것의 실체는 믿음이 없다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인데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시인했다면 여러분은 의인입니다! 그 믿음!!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요, 의인으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런 믿음을 소유하고 사십니까? 그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럼 그런 믿음을 갖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오늘 성경이 요구하는 믿음을 보았는데 이제 그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전할 차례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함께 롬10:17절을 보겠습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
믿음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할 때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까? 들을 때!
너무도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믿음을 가지려고 한다는 것은 속담에 있는 말처럼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습니다.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D.L무디 목사님도 한 때 믿음을 갖는 일에 오해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올바른 믿음을 갖게된 후에 했던 그 분의 간증을 들어보십시오.
{"오래 전, 나는 믿음을 얻기 위해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언젠가 믿음이 내려와서 마치 번개가 내리치듯 내 영과 혼을 강타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내려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0장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롬10:17)는 말씀을 읽었다. 이 말씀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믿음의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나는 성경을 덮고 잠시 기도하였다. 그러고 다시 성경을 펴서 말씀들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믿음은 계속해서 자라났다. 성경은,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유일한 안내서인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기에 믿음을 갖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듣는 것도 아무나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주님은 자주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말씀하셨고 듣는 것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눅8:1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듣는 것에 주의하라.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받게 될 것이요, 누구든지 갖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마저도 빼앗기게 되리라."고 하시더라.]
여기서 가졌다든지 갖지 못하였다든지 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하면 "말씀"을 의미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갖지 못했거나 조금밖에 갖지 못한 사람은 가졌거나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마저도 빼앗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들으면 들을수록 그만큼 더 들을 수 있는 능력도 가지게 되는데, 들을 수 있는 능력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더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열려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여러분의 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더욱더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귀가 열려있으면 있을수록 여러분의 믿음은 그만큼 더 왕성하게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해도 같은 결과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여러분의 믿음은 자랄 것이고, 믿음이 자라면 자랄수록 여러분의 귀는 점점 더 열릴 것이고, 귀가 열리면 열릴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그만큼 더 많이 여러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들음"의 원천이 되고 "들음"은 "믿음"의 근원이 됩니다.
또한,"들음"이 믿음을 갖게 되는 동기가 되고 믿음을 자라게 하는 활력소가 됩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들리지 않거나 졸음이 온다면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지 못한 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들을 귀가 없게 되고, 들을 귀가 없기 때문에 설교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거나 졸음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럼 결국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읽어야합니다.
의인은 무엇으로 산다고 말씀했습니까? 믿음으로! 믿음은 어디에서 난다고 했습니까? 들음에서! 들음은 무엇을 듣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주님은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사람이 무엇으로 산다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오늘 본문은 의인이 무엇으로 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나 믿음으로 사는 것이나 같은 말씀인데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 믿음의 특징은 전부가 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보는 것처럼 믿는 것이고 믿기에 믿는 바에 따라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의인된 성도들에게 바라시는 믿음인 것입니다.
  
결론 적으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보이는 것을 바라거나 어떤 특별한 체험을 기대하거나 초자연적인 믿음을 달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의 실체가 사실은 믿음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 없는 삶은 사는 게 아니라 죽은 시체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살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매 예배 시간마다 들어야 합니다.  
성경공부도 참여해서 들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설교를 듣는 것으로 살아있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생기던가요? 아니라면 들어야 합니다.
듣는 것을 주의해서 더 많이 듣고자 들려지는 자리에 앉아있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읽되 소리내어 읽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기록되어있는데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음으로써 여러분의 귀에 들려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 하심이 다름을 여러분 스스로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히10:38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나 누구라도 뒤로 물러나면 내 혼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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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주께서 오실 세상 끝의 표적  관리자 05·03·31 7889
24    경주 자이십니까?  관리자 04·09·23 5733
23   [칼럼] 나는 지금이 왜 "라오디케아" 시대라고 믿는가?  관리자 04·07·05 4972
22   가족을 돌아 보라  관리자 04·06·08 6573
21    성경적 자녀 양육법  관리자 04·05·05 7240
20    왜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관리자 04·04·22 5574
19    지옥에 간 부자를 기억하라  관리자 04·04·22 6558
18    보시기에 아주 좋았더라  관리자 04·04·02 5649
17    보혈을 통한 구속  관리자 04·02·25 5638
16    주의 은혜로  관리자 04·02·15 6522
   의인은 믿음으로 ..  관리자 04·02·08 5142
14    복음, 누구를 위한 것인가?  관리자 04·01·22 4868
13    고난의 동참자가 되라  관리자 04·01·22 5308
12   내가...하리라!  관리자 04·01·11 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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