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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명언 :::
(2021년 06월 21일 )
독립이 자유롭게 사는 조건이라면 여자는 결혼해서는 안된다.(자멘 그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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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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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은혜로
엡2:1-5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저는 오늘 설교의 본문은 엡2:1-5절까지를 본문으로 하고 설교 각각의 대지들은 찬송가327장'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각 절의 찬송을 말씀과 함께 전개하려고 합니다.
이런 식의 찬송설교가 성경에 지식이 많지 않은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조금은 더 쉽게 알 수 있게 해 줄 것이기에 본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존 뉴튼은 327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찬송을 통해 성도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귀한 것인지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들 중에 아무도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찬양은 구원받은 성도들 사이에 가장 많이 애창되어진 곡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애창곡을 만든 이는 존 뉴튼이라는 분인데 이분을 잠시 소개하는 것이 설교에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존 뉴튼은 당시 지중해를 오가는 상선의 선장이었던 아버지를 통해 나이 열한 살부터 선원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신실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기초적인 믿음은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일곱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폐병으로 돌아가시고 맙니다.
그 후 뉴튼은 뱃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성격도 거칠어지고 삐뚤어져 갔습니다.
그의 생활이라고는 늘 술에 취해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언행과 방탕하고 부도덕한 생활을 하는 것이 다였습니다.
어느 덧 그는 아버지의 배를 물려받아 그 배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상업의 용도로 일을 하던 상선을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잡아와 노예로 파는 노예 선으로 바꾸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벌이가 더 낫다는 이유에서이었겠지요.
그는 배 안에서도 노예들을 가혹하게 대하고 온갖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잔인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항해 중에 그는 사납고 맹렬한 폭풍을 맞게되었는데, 죽음의 공포 앞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세찬 파도가 배를 치고 물이 그의 선실에 들어 올 때 그의 마음은 극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배를 구조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물을 퍼내고 선체에 생긴 구멍을 삼베 자루로도 막아보고, 자기 옷으로도 막으면서 배를 구조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배에 경험이 많았던 그였지만 자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가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마음도 배와 같이 파산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 그가 알았던 두 가지는 자신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것과 자신은 죽음이 준비되어있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순간 그는 희미하나마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기에게 가르쳐 주던 성경구절과 찬송가들과 자신을 위해하던 어머니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며 큰소리로 외칩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라고,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자라는 생각이 들어 기도하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지나온 죄악의 삶을 돌이켜보며 후회하는 가운데 눈물의 밤을 보내게 됩니다.
어느덧 지쳐 잠을 자던 그가 눈을 떳을 때 놀랍게도 폭풍은 물러가 있었고 걸레 같이된 배는 어찌된 일인지 안전히 항구에 닿아 있는 것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마음으로 인정하기를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존 뉴튼에게 사나운 폭풍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고, 노예를 팔아먹는 죄의 삶에서 돌이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죄 용서를 받아야 할 큰 죄인인 것과, 자신에게는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 출석하여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그 때 처음으로 느끼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을 받고 생의 전환점을 가지게 됩니다.
존 뉴튼은 훗날 휫 필드와 웨슬리의 영적 도움을 받아 설교자가 되어 1764년에는 영국교회의 목사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 그가 회개한 지 29년 되는 1779년에 죄악 된 삶을 살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늘 감사하는 그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곡을 쓰게 됩니다.  
그 후로도 그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말씀과 찬양으로 증거 하다가 1807년 78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쳤습니다.
그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한때 불신자요 방탕자였고, 아프리카 노예들의 관리였으나 하나님과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로, 살아남았고, 회개했고, 용서받았고,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되었고, 죽을 때까지 그 일에 전념한 죤 뉴톤 목사 여기 잠들다.]
오늘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곡은 그의 진실한 삶의 간증이면서 동시에 저와 여러분의 간증도 되고 있습니다.  분명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이 찬양의 가사내용 만큼은 결코 잊지 않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존 뉴튼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임종시에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의 나는 기억력이 거의 다 쇠해졌다. 그러나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두 가지는 나는 큰 죄인이고 그리스도는 큰 구주라는 사실이다."  
존 뉴튼은 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절-{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
뉴튼이 '나 같은 죄인'이라는 말에는 나 같은 죄인도 없다라는 말로 자신을 낮출 대로 낮춘 표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구원받기 전에 오늘날로 말하면 인신매매라는 중죄를 지은 죄인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도 이따금씩 뉴스에 인신매매 범들이나 사창가의 악덕포주들이 잡혀 구속되는 것을 봅니다. 참으로 어찌 보면 살인죄보다 더한 가증한 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매되어 사는 삶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그가 받는 상처와 고통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요사이는 10대의 남자들이 자기의 여자 친구를 돈을 받고 남자 친구에게 소개하고 또는 사창가에 팔아 넘기는 사건들도 쉽게 저질러지고 있답니다. 얼마나 큰 죄인지요!
제가 속초에 있었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구령한 형제의 친구가 본의 아니게 이 같은 일을 하여 자살하려고까지 했었습니다. 그 친구는 도박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다가 잘 안 되자 다방에 자신의 동거녀를 담보로 하고 돈을 빌렸습니다.
그러나 도박에서 돈은 다 잃고 동거녀는 다방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큰 일이 생겼습니다.   얼마 안 되 다방 측은 돈이 필요해 그녀를 얼마의 돈을 받고 넘겼는데 그녀가 간 곳은 부산의 어느 사창가였습니다.
이 친구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빌린 돈을 마련해서 다방에 가져왔는데 돈이 필요해서 자기네도 어쩔수 없어서 팔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부산에 사창가를 다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양심에 가책을 받고 죽기를 마음먹는데 얼마전 자기의 친구가 복음을 전했던 일이 생각이 나더랍니다. "지옥이 있고 넌 반드시 지옥에 갈 거라고"완악 하게 거부하던 그 친구에게 강하게 제시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새벽에 형제를 찾아와 그 간의 이야기를 하며 죽고싶다고 하는데 죽는 것은 겁 안 나는데 네가 말한 지옥이 두려워서 못 죽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결국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다시 동거녀를 찾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는데 그 후론 소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양심에 죄책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자신의 어리석은 죄로 인해 한 여인의 인생을 망쳤다는 것을 생각을 할 때 그녀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며 자신을 원망할지 그런일을 생각하면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그 친구가 이야기하기를 자신이 동거할 때도 잘해주지 못하고 술 먹고 때리고 밥상 걷어차고 했던 일들이 생각나 마음을 더 조여오더랍니다.
한 여인을 판 사람의 죄책감도 이처럼 큰데 뉴튼은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인신매매 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양심에 죄의 찔림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주님의 은혜로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그 은혜가 얼마나 놀라웠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존 뉴튼은 평상시에나 심지어 예배 때에도 정장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예 복을 입고 예배를 인도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하기를 "노예를 팔던 자기와 같은 죄인을 구해주신 은혜를 한시도 잊지 않으려고 또 자신이 팔던 노예를 생각하며 노예 복을 입는다"고 고백합니다
이제 이어서 2절에서 고백이 이어집니다.
2절-[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악을 행했는지 알게 되자 주님의 은혜가 고마울 뿐입니다.
자신이 주님을 믿었던 그 날이 귀하고 귀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날이 있기 전까지는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악을 저지르며 사는 죄인인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귀한 것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엡2:2-3[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은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대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전에는 다 이러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구원받기 전에 아셨습니까? 저는 몰랐었습니다. 제가 마귀의 종으로 마귀가 제안에서 역사 하는 대로 행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럼 왜 그처럼 몰랐습니까?
지금도 많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악한 마귀가 눈을 가리웠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가리켜 죄와 허물가운데 죽은 존재들이며 참 소망도 없이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서 지옥의 형벌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에 처해진 사람들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대 마귀는 이 사실을 가립니다. 고후4:4에 보면 마귀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운다고 했는데 복음을 가리듯 죄를 가리우고 죄인 됨을 가리웁니다. 거짓으로 속입니다.
그건 죄도 아니라고, 거짓말 안하고 욕 안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남들도 하는데.. 이 정도는 죄도 아니라고, 지옥이 있다면 너말고도 얼마든지 갈 사람이 많다고...
사람들로 자신의 죄인 됨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전에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벌였던 지존파들도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몰랐습니다. 경찰에 잡혀서까지도 압구정동의 오렌지족을 못 죽인 게 한이고 자신의 부모를 못 죽인 게 한 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눈이 가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옥중에서 한 그리스도인에 의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접하게 되자 눈을 뜨고 그제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지존파 중에 김현양은 사형 집행을 받던 날 형장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크게 부르며 갔답니다. 두목인 김기환도 '하늘가는 밝은 길이'라는 찬송을 부르며 갔답니다. 그리고 자기의 시신을 의과 대학 실습용으로 기증했답니다.
그들 또한 얼마나 큰 죄인들이었습니까? 그러나 눈을 뜨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알고 눈을 뜬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입은 은혜가 그들에게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들이 죽기 전까지 장기수들을 200여명 주님께 인도했다고 합니다.
성경은 죄가 많아진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롬 5:20)고 말씀합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사도바울 이었는데 바울 만큼 또 큰 은혜를 입은 사람도 없지요.
그래서 자신도 고백하기를  [전에는 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요, 박해하는 자요, 중상하는 자였으나 오히려 자비를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하였을 때 모르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3)고 말합니다. 바울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몰랐었다고 말합니다. 그도 눈이 가려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1:15절에서는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고 고백합니다.  
분명 큰 죄악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 은혜가 작은 죄에서 구원받은 사람과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죄를 용서받은 자가 더 많이 주님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뉴튼과 같은 고백을 하십니까?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십니까? 나도 큰 죄악에서 건짐을 받은 큰 죄인이라고 말입니다.
죄는 죄일 뿐입니다. 사실! 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인간의 입장일 뿐 하나님의 시각은 모두 다 똑같은 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이나 몸으로 간음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5:28)
실상 죄가 무엇인지를 요16:9에서 정의하고 있는데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거부한 죄!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죄인지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벌레와 같은 죄인들을 죄를 위해서 죽으신 일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처럼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개를 위해서 개가되고자 한다거나, 개처럼 개밥을 먹으며 심지어 개의 더러움을 위해 대신 죽고자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벌레와 같은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서 형벌 받으시고 지옥에 사흘 동안 사망의 고통을 당하셨는데 그 일을 하찮은 일로, 믿지 못할 일로 여기고 거부하는 행위는 큰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거부하고 자기 멋대로 인생을 설계하고 사는 그 삶 자체의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피조물의 죄가 어떠한 죄인지 가늠해 보셨습니까? 잘 와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매일 밤늦게까지 밖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기가 일수였고 심지어 대마초와 마약을 하기까지 하는 등 제 멋대로 였습니다.
아버지는 타이르고 또 타일렀지만 아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평소처럼 다 늦은 오후에나 돼서야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보다 못해 그의 앞을 가로막고는 말했습니다. "오늘도 밖으로 나가려거든 이 아비를 나를 밟고 나가거라" 하시며 문지방에 가로 누우셨습니다.  
이 때 아들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는 아버지의 말은 들은 채도 하지 않고 아버지를 밟고 나가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이 아들의 행위에 대해서 분노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죄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짓밟고 세상으로 나가 자기 멋대로 인생을 사는 모든 죄인들의 모습이라는 것 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또 자신을 거룩케 한 그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아니한 것으로 간주하고, 또 그 은혜의 영을 모욕하는 자가 얼마나 더 심한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지 생각하라.]{히10:29}
참으로 큰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존 뉴튼만 큰 죄악에서 건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또 바울만 죄인 중에 우두머리는 아닌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같은 죄인입니다. 그렇게 시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면 무슨 말입니까? 자신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게 큰 죄인은 아니었는데 주위에서 하도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해서 믿어줬다! 그렇다면 그는 분명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죄인임을 시인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죄에 대해서 충분히 지적하여 죄인임을 시인케 한 다음 죄의 형벌과 구원의 방법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의 많은 가사들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보통의 사랑이 아니라 크신 사랑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나 감당할 수 없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바다보다 깊다~, '놀랍고도 무한하신 예수님의 은혜', 깊고 깊은 바다보다 더 '깊은 은혜'~, 갈보리의 '크신 사랑'~,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다 못하며~~ '주의 큰사랑' 내가 힘입어 주의 자녀 됐으니~~
또 '크신 사랑'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큰 죄인'이 함께 나옵니다.
나 같은 '큰 죄인' 위해 주 보혈을 흘리셨네.~ '큰 죄에 빠진 나'를 주 예수 건지사~,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주 보혈 흘렸네~."

오늘 본문4절에서도 [그의 큰사랑으로 인하여] 라고 기록합니다.
이 같은 찬송가들을 만들고 부른 사람 모두가 그렇게 인정하기에 지금의 우리도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그와 같이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백이 사실이라면 어찌 내가 구원받은 그 날이 귀하고 귀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로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 복을 누리게 되었는데 그 일에 어찌 고마움이 없겠고 그 날이 가장 귀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거친 일을 하는 뱃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서 눈물한번 안 흘렸다면 그의 구원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존 뉴튼은 찬양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복된 날은 주님을 영접한 그 날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고백하십니까? 그 날이 내가 살았던 모든 날들 중에 가장 소중하고 귀한 날이라고 고백하십니까?
그러나 이 같은 고백이 없다면 그는 아직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해지지 못한 가운데 있는 성도입니다.
아직 내가 주님을 믿은 날이 가장 귀한 날이라고 인정이 되어지지 않으시는 분들은 속히 성장하셔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도 주님을 믿은 날이 가장 소중한 날이라고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3절)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존 뉴튼도 사도 바울처럼 지금껏 자신이 산 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라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10에서  주님의 은혜로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내가 되었고, 또 내게 주신 그 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들 모두보다 내가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그것은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존 뉴튼도 같은 고백을 하는 것은 사도 바울에게서 배운 것이기에 앞서 자신의 솔직한 신앙 간증인 것입니다.
성숙한 성도의 간증은 무엇입니까? 자신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하루도 못산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매일의 반복되는 크고 작은 죄들을 지으면서도 살아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 중에 은혜요, 은혜 위에 은혜는 무엇입니까?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내가 구원을 받아 그 형벌을 면케 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장차 나를 하늘나라 본향에서 영원히 살게 하신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확신에 찬 고백입니다.
바울도 이 같은 확신에 찬 고백을 딤후 4:18에서 합니다. [주께서는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구해 내시고 그의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나를 보호하시리니, 영광이 그 분께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러분에게도 이런 확신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박사가 길을 가다가 한 할머니가 큰 웅덩이에 빠져서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얼른 건져주었는데, 그때 그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맙소. 내가 지금 죽었다면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을 텐데... 그런데 당신은 예수님을 믿으시오?"하고 묻더랍니다.
알프레드 박사는 그 할머니의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당황한 것은 그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이 갑자기 자기 교회에 온 것을 보고 목사는 당황하여 횡설수설하면서 설교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다음 주에도 오게되면 잘 준비해서 멋지게 설교해야지.'
그래서 한 주일 동안 열심히 설교준비를 했습니다. 다음 주에 알프레드 박사가 다시 교회에 왔습니다. 그 목사는 세계적인 대 석학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설교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알프레드 박사는 또 왔습니다. 이번에도 목사는 더 깊이있는 수학과 과학을 동원하여 열심히 설교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알프레드 박사가 사무실로 찾아와서 등록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는 크게 기뻐하면서 자신의 설교가운데 어떤 부분에 감동을 받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알프레드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목사님의 설교에 전혀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감동을 받은 것은 한 노인의 말이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건짐을 받은 노인이 '내가 지금 죽었다면 주님을 만났을텐데' 라고 했던 그 노인의 말이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말씀을 듣고 싶어서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시더군요!"}
여러분에게 이런 확신이 있습니까? 지금 죽는다해도 하늘 나라에 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존 뉴튼이 한 말 중에 이런 유명한 말도 있습니다.
성도가 하늘나라에 이르게 되면 3가지의 크게 놀랄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한가지는 반드시 하늘나라에 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와 있지 않은 것을 볼 때이고 또 한가지는 결코 하늘에서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만났을 때이고 마지막 한가지는 자기와 같은 죄인이 하늘나라에 와 있다는 사실을 볼 때라는 것입니다.
그 때야 말로 주님의 은혜라 말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요.
비록 지금은 주님의 은혜를 잘 모르거나 그 정도가 얼마인지 감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날에 이르게 되면 주님의 은혜가 얼마인지 말을 못해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일 뿐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노라고 인정하고야 말 것입니다.
한 번 믿음의 눈으로 그 날을 바라보십시오. 그 날은 현실로 저와 여러분 앞에 예비 되어 있습니다.
4절-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다시 한번 그 곳에 있게 될 공적을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임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님을 찬양하리라 고백합니다.
그곳 즉 하늘나라는 어떤 곳이기에 해처럼 밝게 살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내시며 다시는 사망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 없고 고통 또한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음이라."고 하더라.](계21:4)
[그 도성은 해나 달이 그 안에서 비칠 필요가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곳을 비추고 어린 양이 그 곳의 빛이 됨이라. 그리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민족들이 그 도성의 빛 가운데서 걷겠으며..](계21:23~24)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그들에게는 촛불도 햇빛도 필요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 무궁토록 통치하리라.](계22:5)
이 일은 반드시 우리에게 임할 것이고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환경에서 살므로 그곳에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니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은 그 곳에 서게 하시고 살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 밖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같은 믿음과 이러한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그 날이 이르기 전 이 지상에 있을 때도 똑 같은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삶인 것이죠?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한 죄인이나 교회는 다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어 불안가운데 신앙생활 하는 교인들은 우리와 똑같은 찬송을 부르지만 저와 여러분과 같은 믿음으로 부르지 못합니다.
단지 그렇게 되길 바라는 간절함 가운데 부를 뿐이죠! 이 얼마나 대조적인 모습입니까?
많은 교인들이 실재로 저와 여러분과 같은 신앙의 자유 함을 누리고 있지 못합니다.
그에 비교해 볼 때도 저와 여러분이 받은 은혜가 얼마나 값진 것입니까?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받았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을 부르는 이유를 알고 찬양을 불러야지요.
감사할 이유가 있어야 감사를 드리지요.
참으로 오늘 존 뉴튼의 찬양은 많은 사람들의 신앙 간증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앞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 불신자들의 마음도 하나님께 이끌 정도의 아름다운 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 그같은 일이 일어났던 일화가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에 얼킨 놀라운 이야기가 빌 모이어즈라는 사람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비디오가 그 것인데 한번 구입해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비디오에는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찍은 장면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록밴드들의 그룹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변화를 축하하려 모였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작진은 오페라 가수 제시 노만(Jessye Norman)을 마지막 순서로 짜 놓았다고 합니다. 이제 그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그 상황을 연상해보시면서 들어보십시오.
비디오는 스타디움의 떠들썩한 군중 장면과 제시 노만의 인터뷰 장면을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도열하는 스피커 굉음으로 '건즈 앤 로우지즈'같은 그룹들이 장장 열두 시간 동안 군중의 귀를 때려 이미 술과 마약에 취한 팬들의 흥분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군중은 앵콜을 외쳐댔고 록 그룹들은 기꺼이 응했습니다.
그 시간에 제시 노만은 분장실에 앉아 빌 모이어즈와 함께 '나 같은 죄인 살리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찬송가를 만든 사람이 누구고 어떻게 그가 주님을 알게 되었고 이 곡을 쓰게 되었는지를 차분히 설명해줍니다.
이제 그 비디오에서는 설명을 들은 가수 제시 노만은 빌 모이어즈에게 말합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존 뉴턴이 오랜 옛날 노예들이 부르던 곡조를 빌려 이 찬송을 쓴 것같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전에 흑인노예들 사이에서 부르던 노래들의 곡조와 비슷하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이윽고 제시 노만이 노래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물결치는 듯한 아프리카 의상을 입은 기품 있는 흑인 여가수 제시 노만이 무대 위를 걸어 나갑니다.  원형 조명 하나만 제시 노만을 따릅니다. 악단도 없고 악기도 없습니다.
제시 노만 뿐입니다.  누군가 군중 속에서 '건즈 앤 로우지즈' 음악을 더 듣자고 외칩니다.
이에 다른 사람들의 외침이 뒤를 잇습니다.  무대가 볼품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시 노만은 혼자서 아카펠라로 아주 천천히 노래를 시작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날 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쉰 목소리로 외쳐 대던 칠만 명 팬들이 노만이 부르는 은혜의 아리아 앞에 돌연 침묵에 잠깁니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노래가 2절에 이르자 군중은 완전히 소프라노 가수 제시 노만의 손안에 들어와 있는 듯 합니다.
3절에 이르자 수천 명의 팬들이 오래 전에 들었던 거의 잊혀진 가사를 기억 속에서 더듬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성령께서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을 사로잡은 듯 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셀 수 가 없습니다.
제시 노만은 후에 그 날 밤 웸블리 스타디움에 무슨 권능이 임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도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함께 찬양하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죄인이었는데 그 큰 죄악에서 건지 사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찬양을 부르시며 다시 한번 헤아려 보는 시간 같겠습니다. 일어나시겠습니다.
부르실 때 혹시 내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그 무엇이 있었다면 부끄럽게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첫사랑을 기억하고 회복하시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서있는 것과 앞으로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일들이 순전히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성숙한 믿음 가운데,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해처럼 밝은 얼굴로 주님께 찬양을 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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