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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간 부자를 기억하라
 관리자    | HIT : 6,557 |
                             지옥에 간 부자를 기억하라
눅16:19~31
본문은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먼저 분명히 집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이 이야기는 비유가 아니라 실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실 때면 항상 비유로 말씀하시길 이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본문에서는 그런 말씀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에서는 이 이야기를 예수님이 지어낸 비유라고 말합니다.
비유라는 근거도 없는데 굳이 비유라고 말하려는 저의가 무엇일까요?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안식교인들은 아예 지옥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신학자와 목사들도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교회들에서 지옥에 대한 설교가 사라지고 있고, 많은 교인들이 지옥의 설교를 듣기 싫어하며, 많은 이들이 지옥을 실재하는 장소라고 믿지 않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지옥의 설교야말로 전해지고 또 전해져야 할 주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옥은 실재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지옥에 간 부자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하고자 합니다.
왜냐면 본문은 낙원에 있는 나사로를 보여주기보다는 지옥에 있는 부자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지옥에 간 부자를 나사로보다 더 자세히 보여주고 있는 뜻이 무엇입니까?
지옥에 간부자의 무엇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까?  우리가 그의 모습을 통해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1.지옥에 간 부자를 기억하라!  
지옥에 간 부자는 주님께서 전혀 기억치 않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생전에 부자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만한 사람이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부자를 동경했을 것입니다.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는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했는데 매일 잔치를 벌이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연회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그의 매일의 삶이었습니다.
그의 집에 한번이라도 초대되어 접대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를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죽어 장사되었을 때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조문객으로 참석했을 것입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행렬이 줄을 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집 주위에 고급승용차들이 즐비하게 줄을 이었을 것이고 많은 화환들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었을 것이고 조문객들은 장사된 부자의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눈물도 흘렸을 것입니다.  
그 부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었겠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그를 조금도 기억하시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엄청난 고통가운데 지옥 가운데서 호소하여도 주님은 전혀 그를 불쌍히 여기시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자는 그의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은 그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의도적으로 그 부자를 향해 "어떤 부자"라고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은 그의 이름조차도 기억할 가치를 느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 부자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지옥에 던져진 구원받지 않은 죄인을 전혀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을 지옥에 보내시지 않는다고 말들을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와 진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필라델피아 교회시대 때 유명한 설교자 조나단 에드워드는 지옥을 설교할 때 말하기를 "하나님은 죄인들을 지옥에 던져 넣으실 때 어떠한 자비도 그에게 베풀지 않을 것이며 동정도 연민도 갖지 않으실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부자가 비록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고, 그래서 물 한 방울만이라도 혀끝에 떨어뜨려 달라고 간구 하지만 부자에게는 물 한 방울의 자비도 주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왜 이 같은 저주의 장소에 오게 된 것입니까?
그가 부자이기 때문이었습니까? 주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기 때문에? 아닙니다.
부자는 하나님을 기억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치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일을 일하고 칠 일째 쉬라고 했는데 이 부자는 매일 먹고 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알았지만 자기를 더 사랑했고 쾌락을 향락을 더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셨는데 나사로를 외면했습니다. 그 말씀을 우습게 여겼던 것입니다.
이 부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죽은 구약시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기 위해선 계명을 지켜야 했는데 그 것을 무시했기에 지옥에 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치 않는 사람들을 기억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죄인에게 조금도 가치를 두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본문으로 다시 알게 됩니다. 이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길 [사람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시 49:20)  

반면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은 가치 있게 여기십니다.  [주의 성도들의 죽음은 주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이니이다.](시 116:15)
때문에 부자의 문전에서 누어있던 거지는 기억하셔서 그의 이름까지 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 라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가 비유가 아닌 실재라는 근거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나사로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인 기술인 것입니다.
그는 역사 속에 살았었던 실재 인물이었습니다.  
나사로는 비록 생전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사람이었지만 아무도 그를 기억하고 싶어하질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자기 성도를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가 성도였다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나사로라는데 있습니다. 나사로: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라!}
나사로는 살아생전 아무 소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무슨 연고로 거지신세가 되었고 그의 온 몸에는 헌데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고 그가 죽자 즉시 천사들을 보내시어 그를 아브라함의 품, 낙원으로 옮겼던 것입니다.
비록 아무것도 없는 그였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신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기억하고 신뢰하는 성도를 기억하십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기억하고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구원받으신 후에도 아직 이 부자와 같은 삶의 방식을 갖고 살아가시지는 않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구원을 받은 뒤에도 세상사람들이 가지고 사는 가치관을 고수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좀 더 안락한 삶을 살고자 좀 더 돈을 벌어보고자 조금만 더 즐겨보고자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던져지고있습니다.
지옥에 간 이 부자를 보십시오. 지옥에서 고통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주님께서 기억치도 않을 부자와 같은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살고자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땅히 이 땅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지 이 부자의 모습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지옥에 간 부자를 기억하라!  
지옥에 간 부자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기억이 없는 소멸의 상태로 들어간다고 말합니다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차라리 그들에게 기억이 없다면,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면 그 곳에서의 고통이 덜할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라]!(25절) 부자는 생전에 자기의 삶을 기억합니다.
쾌락과 방탕가운데 살았던 삶을 기억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살아왔던 삶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재생될 것입니다. 죄를 짖던 장면은 더 크게 보여질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옥에서 형벌 받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할 수 가 없습니다.
단지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 할 뿐입니다.
이 부자처럼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자신들의 기억 속에 자신이 오래 전에 지었던 죄들이 머릿속에서 잊혀졌을지 몰라도, 비록 치매에 걸린 노인이 되어 사고를 제대로 못하게 되었을지라도 분명한 것은 지옥에서 자신의 모든 삶의 기억들이 생생히 회복된다는 사실입니다.
부자는 기억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의 삶들을...
그러나 자신이 지은 죄만을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와 여러분이 지옥에 간 이 부자가 기억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지옥에 있는 죄인이 여러분도 기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사람이 지옥에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도 자신의 삶에 지나온 죄들을 기억하고 자신이 지옥에 온 것을 항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삶의 기억 속에 여러분과 함께 하던 날들이 기억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여러분이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면 그는 여러분의 말에 경청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떤 순간보다도 그 순간을 후회하며 자신에게 진지하게 복음을 전하던 여러분을 지옥에서나마 그래도 고맙게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와 함께 하는 날들 동안 복음을 한번도 전하지 않았다면 그의 기억 속에 여러분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여러분이 교회를 다녔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이었음을 그가 기억한다면 여러분을 향하여 어떤 마음을 가질까요?
자기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있었음에도 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가 기억한다면 그의 심정은 어떨까요?
주님은 지옥에 간 사람들의 모습을 말씀하실 때 그들이 불타는 큰 용광로 속에 던져져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이를 갈고 있을까? 무엇 때문에, 누구를 향해 이를 갈고 있을까 생각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단지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를 가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옥에 간 사람들은 기억하게 되는데 자신의 죄들 뿐만 아니라 자기 주위에 있던 그리스도인들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던 그리스도인이 누구였는지, 반면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던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였는지를!
생생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겠습니까? 그들을 다시 보지 않을 것이니 괜찮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지옥에 간 사람들을 백보좌 심판석 때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백보좌 심판석은 지옥에서 고통받던 모든 죄인들이 잠시 나와 죄인으로서 확정판결을 받고 불 못으로 던져지기 위해서 나오게 됩니다.
그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보좌 옆의 심판석에서 그들이 심판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저를 아는 죄인이 저를 본다면 이를 갈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가 불 못에 던져지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어느 찬송가에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라는 가사가 있다는데 잘못된 가사입니다.
백보좌 심판석이 끝나기까지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계21:4절!
이 지상에서 눈물로 복음의 씨를 뿌린 자는 그 때 눈물을 덜 흘리겠지요.
지옥에 간 부자의 무엇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겠습니까? 그가 기억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지옥에 간 부자를 기억하라
지옥에 간 부자가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지옥에 간 부자가 이제 기억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27,28절 읽고!
지옥에 간 부자가 이제 기억하는 것은 자기 아비 집에 사는 다섯 형제들이었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기억하고 관심 같고 있는 것은 생전에 잘 차려입던 자색 옷과 고운 베옷에 있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지상에 두고 온 많은 재산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즐기던 호화로운 생활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심에는 조금도 그런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지옥에 오게될 그의 가족들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이 부자가 가지고 있는 관심과 일치하십니까?
여러분은 가족이나 친지들이나 주위 사람들을 만날 때 이 부자와 같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십니까?
저는 이 부자가 지옥에서 기억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하고 관심 가져야만 한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왜냐면 지옥에서는 아무리 관심을 가지고 이 고통에 장소에 오지 말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간 많은 구원받지 않은 죄인들이 지상에 사는 자기 가족들에게 관심을 가지나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소리쳐 외치나 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기대를 걸고있는 것은 우리들인 것입니다.
29절에서 아브라함은 부자의 간청에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듣게 하라]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하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와 성도들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는 사람이 지옥에 가서 이 부자와 같이 외친다면 그에게 무슨 대답이 전해지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성경대로 믿는 아무개가 있느니라. 그들에게 듣게 하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지옥에서 고통가운데 절규하는 그들의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
지옥에 있는 그들이 갖는 유일한 관심사항을  저와 여러분이 가져야 합니다.
어디 지옥에 간 사람들만이 갖는 관심사항이겠습니까? 하늘나라에 간 많은 성도들이 갖는 관심사항이기도 할 것입니다.
히12:1 [많은 구름 같은 증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관심가지고 지켜보겠습니까? 복음을 전해서 구령하는 일이 일어나는지 오늘은 누가 구원을 받을지 목놓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을 집중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여러분이 한 사람을 구령하면 천사들의 면전에 기쁨이 있는 가운데 팡파르가 울리며 폭죽이 터지며 환호성이 울려 퍼질 것입니다.
눅 15: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 아홉 명의 의인들보다 회개하는 한 사람의 죄인을 더 기뻐하리라.]
눅15:10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 기쁨이 있느니라."고 하시니라.]
여러분의 관심사항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입니까? 자색 옷과 고운 베옷입니까? 호화로운 삶입니까? 맛있는 음식, 전원 같은 주택, 멋진 차, 가족들의 건강, 자녀들의 교육, 사업계획, 노후대책 같은 것들입니까?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절대관심은 살아있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온통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온통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까?
우리가 곧 주님을 만나게 되면 주님은 우리에게 이 땅에 사는 동안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살았었는지 물으십니다.  
주님은 결코 이 땅에 정치 사회 경제 문화등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살았느냐고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관심을 기울이고 기억해야하는 것은 이 땅 의 빅 뉴스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가져야할 관심은 대통령의 탄핵 안 가결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그 분 앞에 수많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나라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총선이나 이라크 파병이나 한 칠레 무역 같은 일들에 관심이나 가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또한 지옥의 수많은 죄인들이 그런 것들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기나 할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세상정부와 세상사람들이나 관심가지는 일들입니다.
이 땅위를 제외한 천상과 지하의 모든 이들은 오히려 복음을 전해듣지 못한 채 골방에서 죽어 가는 보잘것없는 노인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것입니다.
누가 저 노인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해야 할 텐데..
우리는 하늘의 빅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며 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옥에서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간청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곁에서 죽어 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옥에서의 외침을 듣지 못한다면 결코 복음을 전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어떤 아버지가 어린 딸을 데리고 바다 낚시를 하러 나갔습니다.
그는 배를 타고 나가 바다 가운데 있는 암석에서 낚시를 드리웠습니다.
그러나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린 딸을 암석 위에 앉아 기다리게 하고 혼자 배를 타고 조금 더 깊은 곳으로 가서 낚시를 드리워 봅니다.
그 곳에 가니 고기가 어느 정도 잡혔습니다. 이 아버지는 조금 더 깊은 데로 가서 낚시를 해볼 생각을 갖고 배를 더 깊은 데로 이동시켰습니다.
그 곳에 같더니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고기 잡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해가 지평선 위에 기울자 자신이 너무 오래 지체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습니다. 순간 딸이 기억났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딸" 아버지는 딸을 기다리게 해둔 암석으로 노를 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암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다의 밀물이 들어와 그 바위를 삼키고야 만 것입니다. 그 딸과 함께 말입니다.
그 아버지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절규하듯 소리칩니다.
"내가 딸아이의 외침을 들을만한 거리에만 있었더라면.. 살려달라는 외침을 들을 수 만 있었더라면"
그 아버지는 눈물로 후회를 하지만 사랑하는 딸은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안타까운 일은 지금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옥에서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귀만 있다면 이 땅에 많은 지옥으로 향하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현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옥에서의 외침을 듣지 못할 정도로 세상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던져준 고깃덩이에 군침을 흘리며 오직 그 것에만 관심을 갖느라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옥으로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낚시꾼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지옥에서의 외침이 들리십니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종종 중요한 말씀을 하시고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옥에서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으십니까?
우리는 실재 지옥에서의 외침은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그 외침을 들었습니다.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나의 다섯 형제에게 증거 하여 그들로 이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외침은 현재 지옥에 있는 모든 죄인들의 간절한 외침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누군가 외친다면 그 것은 실재 의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실재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보다 성경의 말씀이 더 확실한 말씀이라고 말했던 바를 여기에 적용하면 우리는 들리지 않는 실재 지옥에서의 외침보다 더 확실한 외침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이 본문은 비유가 아닙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옥에서의 외침을 들으십니까? 혹시 세상의 소리에 너무 귀를 기울인 탓에 정작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너무 멀리 말씀에서 멀어져 있어 이제는 "과연 지옥이 있기는 한가?" "정말 그곳에 있는 구원받지 않은 혼들이 고통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 의심하고 계시는 분은 없습니까?
만약 형벌의 장소인 지옥이 없다면 예수님은 가장 사악한 사기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치사한 신이 될 것이고 저는 시대의 사기꾼이 될 것입니다.
있지도 않은 지옥을 있다고 협박하는 자일 테니까 말입니다.
만일 지옥이 없다면 저는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지옥은 없는데 그 있지도 않은 지옥을 꾸며내 가며 겁을 줘서 돈 뜯어내려고 교회를 합니까? 제가 밥 먹고살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까? 마땅히 먹고 살만한 기술이 없어서요? 결코 아닌 것임을 여러분은 잘 아십니다.
만일 지옥이 없다면 저는 이 교회의 간판을 지금 즉시 뜯어버릴 것입니다.
만약 지옥이 없다면 저는 이교회의 보증금을 빼서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줄 것입니다.
만약 지옥이 없다면 저는 이 무거운 사역의 멍에를 즉시 벗어버릴 것입니다.
만약 지옥이 없다면 저도 이 부자처럼 호의호식하면서 잘먹고 잘 살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지옥이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고 거리에서 설교하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거리에서 설교하는 목적이 교회성장을 위해 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교회로 몰리기 때문에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왜 여러분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흔히 말하는 것처럼 예수 믿고 복 받아야 하기 때문 에요? 아닙니다.
여러분이 왜 복음사역에 동참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저에게 힘을 실어줄려고요? 아닙니다. 지옥 있기 때문입니다.  
실재하는 장소로 지옥이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지옥에 간 부자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가 살았던 삶이 아무것도 기억 될 만한 인생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아무것도 아닌 삶을 추구하며 사느라 복음을 외면하고 산다면 그사이 주위에서 죽어간 우리의 이웃들이 지옥에서 무슨 기억을 하며 이를 갈게 될지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며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는 아직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여러분들이 기억하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들만이라도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울부짓는 외침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복음을 들고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주님은 오늘 우리로 지옥에 간 부자의 모습을 보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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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고난의 동참자가 되라  관리자 04·01·22 5308
12   내가...하리라!  관리자 04·01·11 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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