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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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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관리자    | HIT : 5,573 |
                        왜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누구나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라 오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의 종도 거기에 있으리니, 누구나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시리라.](요 12:26)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는데 본문에서는 섬김을 당연하듯 요구하고 계십니다.
왜냐면 주님은 고난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고난을 지나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고난이 곧 주님을 섬김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고난이 있습니까? 있다면 주님을 잘 섬기고 계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습니까? 아직 주님을 섬기는 자라 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섬긴다 하면서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주님을 섬기는 자가 아닙니다.
그럼 우리는 왜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까? 주님을 섬기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이유나 목적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정 반대인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아무것도 안 주시고 마냥 요구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후히 주시고 조금 바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왜 우리는 주님을 따라야 하는가? 라는 역설적인 주제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1. 주님만이 따라야 할 길이 되시기 때문
앞에 요11:25절에서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4:6절에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고 말씀하심으로 주님이 누구신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경배드리기 위해서 나온 헬라인들, 즉 이방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시대의 성도들이 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정도의 길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인생에서 답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진리이신 주님이 답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인생에서 죽음을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자신만이 바로 그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시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이 따를 길이 주님이십니다. 이 길 외에 다른 길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진리를 알지 못하는 어떤 종교인들은 말하기를 길은 달라도 도착하는 곳은 다 같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목사라는 사람이 불교에도 진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에큐메니칼운동시대를 넘어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이름을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고 행4:1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구원의 주님을 몰라 죽음의 길을 갑니다.
잠 14:12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이니라.]
이 죽음의 길을 마7장에서는 멸망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멸망의 길을 간다고 합니까? 자기가 보기에 옳아보니까?
성경은 이들을 자기 눈에 좋을대로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면서도 인생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던지 쓸데없는 소리 또 한다고 말을 돌립니다.
초상집에 조문객으로 가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좀 깊이 생각하려고 하면 술이나 마시라고 이끌던지 고스톱 판에 껴서 어울리자고 이끕니다.
왜 세상사람들이 엄숙한 초상집에서조차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을까요?
성경은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좋은데  이유가 [그것이 모든 사람의 마지막이며 살아있는 사람이 그것을 자기 마음에 유념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전7:2절).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 고스톱을 치고 술만 마시는 것일까요?  
잠 5:6에서 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길들은 네가 생명의 길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유동적이니, 이는 너로 그것들을 알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그녀는 계17장의 창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만 그 창녀(카톨릭)을 조종하는 사탄을 가리키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실제 사람들로 생명의 길을, 진리의 길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가리웁니다. (고후4:4절!)
그러면서 멸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마귀의 이름 중에는 히브리어로 아바돈이요, 헬라어로 아풀루온이라고 계시록에 기록하고 있는데 뜻은 멸망케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마귀는 생명의 길을 가리우고 멸망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는 믿음의 좁은 길을 가리우고 넓은 길을 제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보게 합니다. 봐라! 정말 저 많은 사람들이 멸망으로 간단 말이냐?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다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못합니다.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왜 비웃습니까? 뭘 알아서 비웃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 믿는 것을 믿고 있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지 않고 있는 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어디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좌우됩니다. 잘못된 기준을 가진 자들의 공통적인 성향이 그런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게임 같은 퀴즈가 있습니다. 문제를 내면 답에 따라 오 엑스 진영으로 나뉘는..    처음에 쉬운 문제에는 쉽게 답을 선택해서 섭니다.
그러다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답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합니다. 이러 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은 선택을 하긴 해야겠는데 무엇이 답인지는 모르겠고 그러다가 결국 한쪽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 선택을 할 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어느 쪽에 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쪽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유동적이지 않고 답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답이 있는 쪽으로 몰려도 전혀 개의치 않고 흔들림 없이 서있습니다.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리 그 무리가 소수더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보이는 모습이 엉성해 보여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준은 진리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진리가 기준이 못되고 항상 보이는 것을 신뢰하고 다수를 의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가지 않는데. 이 교회는 사람도 적은데...
저 쪽 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데, 똑똑한 사람들 변호사, 교사, 법무사들도 많이 그 교회에 가는데.. 그러면서 큰 교회에 갑니다. 사람을 따르는 자입니다.
많은 사람이 사람들을 따르고 주님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말은 하면서 말입니다.
주님은 이런 일들을 아시는 분이셨기에 한가지 싸인을 주신 것이 있습니다.
진리의 편은 소수이고 믿음의 길은 좁은 길이라는 싸인입니다.
실재 성경을 보면 항상 소수의 사람이 진리의 길을 걸었던 것을 봅니다.
카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12명중 10명은 믿음 없는 보고를 했고 2명의 소수만이 믿음의 선한 보고를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드온전쟁 때는 어땠습니까? 십 삼만 오천 명의 미디안 군대 대 300명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엘리야 때에는 어땠습니까? 바알 숭배자와 아세라 숭배자들 850명 대 엘리야 한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12명의 제자들 대 다수의 제사장들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 자를 고쳐주셨을 때는 9명은 주님께 감사치 않았고 1명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때 믿음 있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그러나 인자가 올 때 그가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고 하시더라.}(눅 18:8)
성경의 증거뿐만 아니라 교회사적 증거를 보더라도 진리의 편에선 사람들은 늘 소수였습니다.
교회사 초기에는 다수인 로마 제국이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으며, 중세(암흑) 시대에는 다수인 로마 카톨릭이 성경대로 믿었던 소수의 "지하 교회"(왈덴시안, 보고마일즈, 폴리시안, 불가리안, 까따리 등)를 박해했고, 종교개혁 이후에야 하나님의 교회가 크게 성장했지만, 그 때에도 국가-교회가 "재침례교도" 등의 성경대로 믿었던 사람들을 계속해서 박해했었습니다. 또 20세기에 들어서는 누룩이 독버섯처럼 퍼져 다수의 교회들을 부풀려 버렸고 성경대로 믿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단"으로 불리고 있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겉보기에는 성장한 것 같은, 20세기의대형 교회들에게 계시록에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이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네가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마지막 라오디케아 교회시대인 지금도 진리는 소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수가 어떻게 하더라 하는 기준들은 올바른 기준들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그런 기존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다수에 따라, 사람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세상사람들의 기준과 다르지 않은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따금씩 예배에 출석하지 않더라! 나라고 꼭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라는 법이 있냐?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경공부에 참여하지 않던데, 뭐 나라고...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경을 읽지 않더라! 나라고 꼭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하나?
대부분의 성도들이 구령하지 않더라! 나라고 꼭 구령해야 하나?
대부분의 성도들이 거리설교에 가지 않더라!
대부분의 성도들이 다들 수요기도 모임에 나오지 않던데 뭐,  지각하고,, 나라고 ....  
여러분에게 이런 생각은 없습니까? 물론 다른 성도들의 모습에 아주 영향을 받지 않을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주님을 따르는 성도라면 그 것들이 무슨 상관입니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그 것 아니겠습니까?
(요 21:2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니라.]
세상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여러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른 성도들이 어떻게 하든 여러분과 상관이 있습니까? 역시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저를 따르지도 마십시오 저도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라오라!  
너무도 분명한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항변하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말씀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가 애들인지 아십니까? 주님을 섬기려면 주님을 따라야지 누굴 따르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주님을 섬기고자 하신다면 주님을 따르십시오!
왜 다른 성도들이 어떻게 하는냐에 따라 움직이십니까? 그러면서 어떻게 나는 주님을 따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말씀이 나에게 해당된다고 생각되시면 이 말씀을 제가 하는 말로 듣지 마시고 주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르라!
왜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주님만이 우리가 따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신 분이시오, 여러분에게 풍성한 생명을 약속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주님을 섬기고자 하면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2. 우리는 주님의 종이기 때문에
주님은 종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친히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본문 다음절27-28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자신을 위해서 사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를 기억하시죠? [“오 나의 아버지시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하지 마옵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하옵소서.”하고](마태복음 26:39). [다시 두 번째로 가셔서 기도하며 말씀하시기를 “오 나의 아버지시여,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시고,](마26:42).
이에 대해서 빌립보서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빌2:6-8절 보겠습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10:8-9을 보시면 [그때에 말씀하시기를“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하셨으니 첫 번째 것을 패하심은 두 번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이요, 거룩하게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셨는가를 잘 보여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고후1:19-20보겠습니다. [우리, 즉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너희 가운데서 전파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와 "아니오"가 아니라 그 분 안에는 "예"만 있었느니라. 그 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가 되기에 우리는 그 분 안에서 "아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노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항상 순종만이 있었습니다.
주님이‘예’하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셨음을 말하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누구의 뜻에 복종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종은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위를 보면 주님의 종들이라 자처하는 사람들 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 달 학회지 보셨습니까? 기독교계에 유명하다는 옥한흠목사가 여성이 목사가 되는 것이 성경적이냐 비성경적이냐? 물으니까 한다는 소리가 "우리 교단은 아직 신학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어 있지 못하대요.
그러면서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이 문제를(여자목사문제를) 폐쇄된 전통에 의해 무조건 붙들고 고수해서는 안되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교단 입장이 아직 서있지 않답니다.
여성목사에 대한 문제가 신학 적인 문제고, 교단 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냐에는 관심 밖입니다. 이런 사람이 무슨 주님의 종입니까?
정치참여에 대한 글도 읽어 보셨지요? [한국기독당] 수치를 있는 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비 성경적인 실행들을 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서 잘 못된 일 임을 알면서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다수의 교회들이 문제입니다.
김준곤, 조용기, 등 내노라 하는 어르신들이 하는 일이라 아닌 줄 알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모르고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만 그것은 비 성경적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라오디케아 교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유부단함입니다.
우물주물하면서 진리와 비진리 앞에서 가부간의 결단을 못 내리는 것입니다.
진리인줄 알면서도 따르기를 주저합니다.
비 진리인 줄 알면서도 여타의 이유들을 내밀며 비 진리를 버리지 못합니다.
차지도 덮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 인입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역겨워 토해내고 싶으시다고 계시록3:1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종은 입장이 분명해야 합니다. “예”면 “예”, “아니오”할 때는“아니오”라고 말하며 그렇게 실행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말입니다.
마태복음 5:37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오직 너희 말은 ‘예’는‘예’로,‘아니오’는 ‘아니오’로 하라. 그 이상의 것은 무엇이든지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
누가복음에 보니까 주님께서 종들이라 시인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눅 6:46)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나를 '주여, 주여.'라고 부르면서도 내가 말하는 것들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더 말씀하신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길이라 부르면서도 왜 따르지 않느냐.
너희는 나를 진리라 부르면서도 왜 붙잡지 않느냐?
너희는 나를 생명이라 부르면서 왜 나아 오지 않느냐?
너희는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 왜 쳐다보지 않느냐?
너희는 나를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왜 두려워하지 않느냐?
너희는 나를 구주라 부르면서 왜 사랑하지 않느냐?
너희는 구원받지 않으면 지옥에 갈걸 알면서 왜 복음을 전하지 않느냐?
여러분은 주님의 종이십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있는 곳에는 나의 종도 거기에 있느니라] 주님의 종은 주님이 계시는 곳에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주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3.영화가 있기 때문에
[누구나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시리라]
28절에 [아버지시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니,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나기를 "내가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고 또다시 영화롭게 하리라."]
주님은 죽음에까지 순종하심으로 영화를 얻으셨습니다.
고난을 통과 한 후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를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발자취로 남겨 놓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한 본을 남겨 놓으시어 너희로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느니라.]
고난이 있은 후 영광입니다.
한 지역교회 목사님이 최근에 보석 박물관에 다녀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석들이 참 아름답더라!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보실 때 저 보석처럼 보신 다니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 또 보석이 박힌 왕관을 보았는데 가슴이 뛰더라. 주님이 주실 면류관은 저 왕관 보다 더 훌륭할 텐데 하는 생각에, 그러면서 속으로 '주님 더 고난을 주십시오' 기도했답니다. 많은 시련을 받고 있는 목사님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주실 면류관은 단지 왕관이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그냥 보석이 박힌 면류관이 아닙니다. 그 면류관이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려고 열심히 땀을 흘리는데 고작 금메달 몇 돈 안 되는 그것 얻으려고 그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닌 것이죠!  영광입니다.
그것을 비교해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고전9:24-25[경기장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모두 달릴지라도 한 사람만이 상을 받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너희도 상을 얻게 되도록 달리라.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자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어질 면류관을 받으려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고자 함이라.]
그런데 오늘날 주위에서 보면 이런 썩지 않을 영광을 구하기보다는 이 땅에서 어떻게 잘 살아 볼까? 복 받고 살아볼까 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고난받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고난을 피하려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 12:43) [이는 그들이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음이더라.] 여러분은 무엇을 더 사랑하십니까? 썩어질 잠시동안의 영화입니까?
영원에서의 영광스런 영화입니까?
그리스도인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학 한 마리가 달팽이를 찾으면서 하천을 거닐고 있었답니다.
그 때 어디선가 아름다운 백조 한 마리가 내려와 학 옆에 앉았습니다. 학은 전에 백조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묻기를 "너는 누구니?"하고 묻자 백조가 "나는 백조야"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학이 "너는 어디서 왔니?" 묻자, "하늘에서" 라고 백조가 말했습니다. "거기가 어딘데?" 학이 묻자 백조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천상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조는 벽옥으로 지어진 성벽과 각양보석으로 단장된 성의 기초석들, 순금으로 된 길과 진주 문으로 이루어진 열 두 대문이 있는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백조는 더 자랑하기를 "수정처럼 맑은 순수한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 그때 학이 백조의 말을 가로채면서 물었습니다.
"알았어 그만해, 그런데 거기에 달팽이도 있니?" 그러자 백조는 "달팽이는 없어"하자
백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학은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럼 됐어, 난 지금 달팽이를 잡고 있었거든, 나 귀찮게 하지마!"
이 학의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면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일이 어렵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만이 따를 길인데, 다른 길은 없는데도 안 따릅니다.  
성도는 주님을 마땅히 따라야 종인데도 종의 신분을 져버리고 안 따릅니다.
이를 아셨는지 주님은 마지막으로 보상을 약속하시면서 따르게 하십니다.
영원에서의 영광스런 영화를 주리라! 그래도 안 따르겠느냐?
히브리서11장에 보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이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고 주님을 섬기고자 주님을 따르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주님만이 모든 인생이 따를 유일한 길이기 때문!
왜 우리가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우리는 주님을 따라야 할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영광스런 영원에서의 영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만하면 왜 우리가 주님을 따라야 하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 충분하지 않습니까?
끝으로 이 달 학회지에 나온 밥 존스 목사의 글을 인용하면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일들을 준비한다.}
여러분은 현명한 사람들이십니까? 여러분은..
진리이신 주님을 피하거나 부인할 수 있습니까? 없다면 주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피할 수 있습니까? 없다면 주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영원에서의 더 큰 영화를 포기할 수 있습니까? 역시나 없다면 주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기도
우리의 주인 되시는 주님!
아직 이 자리에 주님만이 진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성도가 있습니까?  
여전히 자신이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성도가 있습니까?  
영원에서의 영광보다 세상에서의 영화를 더 사랑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이후로 모든 눈을 열어주셔서 진리 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을 만날 준비를 신실하게 행하는 모두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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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성경적 자녀 양육법  관리자 04·05·05 7240
   왜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관리자 04·04·22 5573
19    지옥에 간 부자를 기억하라  관리자 04·04·22 6557
18    보시기에 아주 좋았더라  관리자 04·04·02 5648
17    보혈을 통한 구속  관리자 04·02·25 5637
16    주의 은혜로  관리자 04·02·15 6521
15    의인은 믿음으로 ..  관리자 04·02·08 5142
14    복음, 누구를 위한 것인가?  관리자 04·01·22 4868
13    고난의 동참자가 되라  관리자 04·01·22 5308
12   내가...하리라!  관리자 04·01·11 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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