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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명언 :::
(2021년 06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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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자이십니까?
 관리자    | HIT : 5,733 |
                            경주 자이십니까?

경기장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모두 달릴지라도 한 사람만이 상을 받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너희도 상을 얻게 되도록 달리라.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자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어질 면류관을 받으려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고자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처럼 달리되 불확실하게 하지 아니하며, 또 내가 그처럼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아니하노라.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전9:24-27)
고린도 교회에게 사도바울은 경주 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실재 경주하는 운동선수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도바울이 이 비유를 들 때 고린도지역 바로 옆에 있는 아테네에 올림푸스 경기를 의식하며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BC776년에 경기가 있었던 것으로 문헌상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올림픽도 기원이 아테네이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바울 당시에 아테네와 근방의 헬라인들은 운동경기를 종교와 같이 인식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합니다. 사실 고대올림픽은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그리스인들의 헌신적인 제전행사로 따지고 보면 신들을 위한 축제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경기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도 보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언급하면서 너희도 그들처럼 신들 중에 신이신 주 하나님을 위해 달리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아테네 올림픽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올림픽을 뉴스로 지켜보면서 바울이 본문을 통해 말하고 있는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여러분들은 아테네 올림픽을 보십니까? 여러분도 그들처럼 달리십시오 하고 설교할 것을 주님께서 생각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올림픽을 조금씩은 보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거기서 무엇을 보십니까? 경주하는 선수들을 보지 않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경기를 하던가요? 그리고 그 경기에 출전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다고 들으셨습니까?
다름 아닌 오늘 본문이 그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참으로 경주자의 요구조건이 본문에 잘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봄으로써 경주자로 잘 달릴 수 있기를...

경주 자에게 요구되는 것!
1.우선 경기장에 들어와야 합니다.
경주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먼저 무엇보다 경기장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레인의 출발선에 서야 합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소스를 얻고자 뉴스를 보다보니 어떤 선수가 어떤 이유로 경기에 불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럼 그는 선수도 경주자도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재능이 있고 전적이 화려 했더라도 경기장에 들어오지 않으면 경주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주를 하기 위해선 경기장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 경주자에게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기장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에는 들어오지 않고 경기장 밖에서 뛰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구원도 안 받은 채 뛰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더 자세히 말하면 구원을 위해서 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뛰나 결코 경주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주자의 조건은 경기장에 들어와야 하는 것처럼 구원받아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야 경주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분명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을 위해서 달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경기장 밖에서 뛰는 사람들은 마치 경기장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구원을 위해서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상을 얻게 되도록 달리라 말씀하시는데도 그들은 구원을 얻게 되도록 달리라로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경주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은 열심히 달린 경주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기록 당시에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이 벌이는 경주에서는 경주를 할 경쟁자들이 반드시 그 나라 시민이어야만 했습니다. 노예나 이방인은 절대 선수로 참가해서 경쟁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경주도 경주자는 모두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이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경주자 이십니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경주자에 등록된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실 상 경주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경주자로 부름받는 조건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경주자의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경주가가 아닌 사람은 경기장 밖에 있는 사람인 것이고 경기장 밖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헛일인 것이죠.
경주를 하려면 경주자의 자격을 얻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경기장 안에 들어와 계신 것이고 출발선에 서있는 것입니다.

경주 자에게 요구되는 것!
2. 달려야 합니다!
왜 달려야 합니까? 우스운 질문 같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주자라면서도 달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달려야 하는 지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달려야 합니다" 라고 말하면 "예? 왜 달려요" 하고 물을 것 같습니다.
경주자가 경기장에 왜 들어왔겠습니까? 달리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우리가 경기장에 들어온 목적이 남이 달리는 것을 보기 위해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관중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경주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달려야 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인생을 달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경기장 밖에서 달리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경기장안에서 달리고! 모두가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경기장 밖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지옥을 향해서 달리고 있고 경기장안에서 달리는 사람들은(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을 위해서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짿든 사람들 모두가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도 말합니다. 내가 오늘의 성공을 위해 이 시간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노라고! 또는 아! 내가 무엇을 위해 이제껏 달려왔던가? 하는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인생을 달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욥 9:25 이제 나의 날들이 전령보다도 더 빨라 달아나 버리니 좋은 일을 보지 못하는도다.
욥 9:26 그 날들은 빠른 배들처럼 지나가 버리고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독수리 같도다.
잠 1:16 이는 그들의 발은 악으로 달려가 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사실 우리가 느끼기에도 인생은 걷는 것이다라는 말보다는 달리는 것이다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내 인생은 이처럼 달리는 인생입니다. 때문에 달려야 합니다.
경기장에서 달리는 경주자로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경주자 이십니까? 그렇다면 달려야합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제 달릴 수 있는 경주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결승선이 아니라 출발선을 의미합니다.

경주 자에게 요구되는 것!
3. 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겸손한 채 하는 사람들은 상을 받기 위해 주님을 섬기는 것은 부도덕한 동기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옳다고 동조해 줄 만한 성경구절은 없습니다.
오히려 오늘 본문 24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도 상을 얻게 되도록 달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 자신도 "나는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해서 달린다"고 빌3:14절에서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11:6절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 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 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고 말함.
그러므로 우리도 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주님은 우리가 달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상을 준비해 두시고 계신 것입니다.
왜?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상을 목표로 달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알 것은 우리가 상을 그토록 바라보고 존중하는 것은 상을 주시는 그분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상 자체는 참으로 우리의 일생을 드려 달려서 얻을 만큼 귀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주"라고 하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앞에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은 아무런 댓가 없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주는 참가하기만 하면, 경기장에 들어오기만 하면 상을 주는 그러한 경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너희도 상을 얻게 되도록 달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상을 "썩지 않을 면류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면류관은 세상의 것들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운동선수들은 썩어질 면류관을 받습니다. 지금의 아테네 올림픽이 그 진상을 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머리에 쓰는 면류관은 월계수로 만든 월계관인데 바울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그 면류관의 특징은 며칠도 되지 않아 시들고 썩어버려 쓰레기통에 던져지게 될 그런 면류관입니다.  그들이 받은 메달도 받을 때는 기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장식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만 차지하게 될 그런 메달입니다.
그리고 썩어질 면류관에서의 썩어짐은 면류관만이 아니라 면류관을 받은 그 자신도 무덤에서 썩어지게 되는데 이는 잠시누릴 영화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게 될 면류관은 썩지 아니할 면류관입니다.
이 면류관은 우리가 영원 세계에서 영원히 사는 동안 영원히 우리 머리에 쓰고 있게 될 참으로 귀중한 영광스런 면류관입니다.
그 영광이 전혀 퇴색되거나 쇠잔해지지 않을 그런 면류관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25절에서 말하길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고자 함이라"고 말합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이 서신을 읽고 있는 지금의 우리를 포함한 우리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면류관을 받고자 함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받고자 하십니까?
받고자만 하신다면, 그래서 달리기만 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운동경기에는 1등이 한 명만 존재합니다. 본문24절에서도 달리는 사람들 모두가 달릴지라도 한사람만이 상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달리기만 하면 상을 받을 수 있고, 누구나 다 일등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들 서로간에 경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경쟁하고 있기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순교자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사용하셨던 혁혁한 믿음의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롬 14:12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들에 관해 직접 설명하리라.
고전 3:8 이제 심는 자와 물주는 자는 하나이니라. 그러나 각 사람은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니라.
고전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현명한 건축가와 같이 기초를 닦았더니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지으니라. 그러나 각 사람은 그 위에다 어떻게 지을지 주의해야 할 것이라.
고전 3:13 각 사람의 일한 것이 나타나게 되리니 그 날이 그것을 밝힐 것이라. 이는 그것이 불로써 드러나고, 또 그 불은 각 사람의 일한 것이 어떤 종류인지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주께서 오시기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주께서 어두움에 감추어진 것들에 빛을 비추시고 마음의 의도들을 나타내시리라. 그때서야 하나님께로부터 각 사람이 칭찬을 받으리라.
고전 7:17 오직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대로, 각 사람은 주께서 부르신 대로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도 그렇게 지시하노라.
고전 7: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안에 거하라.
각자가 자기가 달린대로 상을 받게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믿음의 선배들 그들에게는 그들이 달려야 할 코스와 목표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코스와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어찌든지 우리 각 사람은 각자의 경주를 열심히 달리면 상이 주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경주자라면 상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경주 자에게 요구되는 것!
4. 규칙대로 달려야 한다.
아무리 잘 달려도 규칙을 어기면 면류관은 없습니다.
딤후2:5 또 누구든지 경기를 할 때 규칙대로 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하리라.

미 야구클럽에는 "정정당당하게 이기지 않은 승리는 승리가 아니다."라는 표가 붙어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경기철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즈음의 신시대 경기 철학은 "무조건 이겨라"인 것 같습니다.
"수단과 방법이야 어찌 되었건 무조건 이겨 놓고 보라." 이것은 현대인들의 생활 규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성경이야 뭐라고 말하건,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교회성장, 교회성장, 사람만 모이면 돼!"       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달리라는 말씀과 더불어 경기를 할 때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고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경기규칙이 무엇입니까? 다름아닌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대로 하지 않으면 면류관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하는 게 어려운가 하면 그렇치 않습니다.

육상경기에서 달리는 규칙이 단순하고 방법도 단순한 것처럼 믿음의 경주도 단순합니다.
물론 어렵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렵게 되어 버렸지만,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주 쉬운 것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로 생명이라"고 하신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만을 따라서 가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베드로는 말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한 본을 남겨 놓으시어, 너희로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느니라.}(벧전 2:21)

경주자에게는 달려야 할 경주로가 있으며 규칙대로 잘 달리게 되면 썩지 않을 면류관이 주어진다고 말씀합니다.



경주 자에게 요구되는 것!
5. 자제해야 합니다.
실제 운동선수들은 많은 부분 자제합니다. 술, 담배하는 운동선주를 보았습니까? 있다면 상을 포기한 선수들이겠지요. 다른 많은 일에도 자제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그들은 메달을 따기 위해 휴가도 반납하고, 명절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선수촌에서 땀을 흘렸다고 말입니다. 밥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빼면 오로지 연습에만 메달렸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선수는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땃는데도 관중들이나 응원하는 사람들보다 크게 기뻐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쁨이나 회환의 눈물도 흘리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선수의 독백을 듣는 듯 했습니다.  "나는 훈련 중에 땀과 눈물을 다 흘려서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다. 나는 당연히 메달을 딸 줄 알았다."  그러면서 관중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마시고 싶은 것 다 마시고, 다니고 싶은 곳 다 다니고 할 때 오로지 이 메달을 위해 그 모든 일을 자제했노라. 그러므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노라"
왜 그들이 그처럼 자제했다고요? "썩어질"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
바울은 썩어질 면류관을 위해서도 세상의 경주자들이 그처럼 자제하는데 하물며 썩지 않을 면류관을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겠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자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남들 하는 거 다하고 잠잘 꺼 다 자고 먹을 꺼 다 먹고 한다면 어떻게 그게 달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어떻게 상을 받겠습니까?
자제한다는 것에 대해서 바울은 27절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자기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몸을 억제하여 복종케하는 것은 경주자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지침사항임.
사도바울은 지금 운동선수에 빗대어 말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사실상 비유가 아님.
실재적인 것입니다. 이 말은 영적인 적용도 아닙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몸을 억제하여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잘 관리 보존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냐구요?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몸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아닌 몸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몸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능력과 표적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몸을 사용하셔서 일하십니다.
그런데 몸을 자기 멋대로 자기 좋자고 자신의 몸에 알콜을 들이붓고 담배연기를 집어넣어 건강을 헤치는 것은 그래서 그것이 죄인 것입니다. 자기 몸도 아닌데!!
결국 성도가 자기 몸을 다스리지 못하여 병상에 드러눕게 되면 그 자체는 버림받게 되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27절에서!
병들어 침상에 누운 성도!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를 통해서 더 이상 일하실 수 없습니다.
바울은 때문에 자기 몸을 억제하고 복종하게 했던 것입니다. 경주를 계속하기 위해서! 복음을 계속해서 전파하기 위해서! 그래서 바라던 상을 얻기 위해서!
결국 사도 바울은 원대로 그 일을 이루었습니다. 딤후4:6-8절에서 이 같이 고백합니다.
함께 읽고!!
얼마나 멋지게 경주를 시작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을 어떻게 맺느냐하는 것입니다.
무디 성경학교학장을 역임했던 윌리엄 컬버트슨 박사는 생전에 입버릇처럼 기도했던 말이"하나님, 우리가 잘 끝낼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성경교사로 유명했던 영국의 마이어 박사도 자신의 일생이 "늪 속에서 끝나게 되지 않기를" 몹시 바람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출발은 멋지게 했으나 비극적인 종말을 고한 사람들이 여럿 나옵니다.
우선 생각나는 사람만 꼽아 봐도 롯, 삼손, 기드온, 사울왕, 웃시야왕, 데마등이 있습니다.  이들도 한때는 경주자들 이었지만 실격자로 끝을 맺고 만 사람들입니다.
실격자라는 그들의 꼬리표는 영원히 달려있게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경기장에 들어온 경주 자입니다. 경주자는 무엇보다 달려야 합니다.
상을 바라보고 레인을 벗어나지 말고 규칙대로 달려야 합니다. 그
리고 완주자가 되기 위해선 모든 일에 자제하고 몸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경주하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즐겁거나 재미있지 않은 일임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재미를 원한다면 경주자가 아니라 관람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 우리가 운동경기를 보아도 경기하는 사람들보다는 관람하는 관중들이 더 재미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축구경기를 들어 정의하길"축구경기는 운동을 해야 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 스물 두 명의 건강한 남자들을 응원하게 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행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경주 자이십니까? 관람객들이십니까?
분명 경주자로 달리는 것보다 구경하는 관람객들이 훨씬 더 재미있고 편안합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열심히 달렸던 경주 자가 상을 받게 될 때도 편하고 재미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달린 결과 주님으로부터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게 될 때 관람객처럼 관망만 하던 그리스도인들은 그제서야 "나도 달릴 껄"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껄, 껄, 껄거리며 후회의 통곡을 할 것입니다.
나도 달릴 껄, 나도 전할 껄, 나도 참여할걸,  껄, 껄, 껄...
아직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하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부질없는 후회를 하며 영원을 노숙자와 같이 할 일없이 지내는 분들로 대하기를 정말 바라지 않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운동선수들을 빗대어 경주자로서 달릴 것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열리고 있는 올림픽 선수들을 봄으로써도 달릴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정한 경주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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