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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26일 )
많은 사람이 충고를 받지만, 오직 현명한 자만이 충고의 덕을 본다.(푸블릴리우스 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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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경은 '게으름'을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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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게으름'을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그러므로 그가 말씀하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고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얼마나 정확히 행하고 있는지 주의하라. 미련한 사람같이 행하지 말고 현명한 사람같이 행하여 시간을 사서 얻으라. 이는 그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 이로 인하여 너희는 어리석게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엡 5:14~17)

  문맥을 보면 위 본문이 게으름에 대한 경고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범하기 쉬운 '악'이 있다면 그것은 '게으름'일 것이다.
그렇다. 게으름은 '악‘인 것이다.
성경은 그 게으름을 “악”이라 말씀하신다. 그래서'악'은 어떠한 형태로든 피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있다(살전 5:22).  
그런데 문제는 선명하게 악이라고 판단되어지는 악(술,담배,마약,디스코 텍,카지노,...)들은 잘 피하지만 그렇지 않게 보이는 악에 대해서는 많이 걸려 넘어짐을 본다.
그 걸려 넘어지는 것 가운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넘어지는 악이 게으름일 것이다.
실재 많은 그리스도인이 게으름에 의한 악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왜 게으름을 '악'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인가?
게으름은 시간을 좀 먹는다. 아무 하는 일없이 무의미한 날들을 보내게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시간을 사서 얻어야 하는 주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주님은 성도를 그의 피 값을 지불하여 사셨기에 성도의 시간 또한 주님의 것인데, 주님의 것인 그 시간을 게으름으로 낭비하여 아무 열매 없는 날들을 보내게 된다면 그 날들 역시나 악한 날들이다[이는 그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라](엡 5:16)...
그 날들이 악하다면 그 악한 날들을 사는 그 성도 역시나 악한 종인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곳에서 모으는 줄로 알았으니..](마 25:26)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많은 성도들이 게으름을 악이라고 까지는 여기지 않는데 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게으른 자의 모습을 보면 그의 생각과 결정과 행동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잠언에서는 게으른 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 기록들을 통해서 게으름에 대해 살펴보고 게으름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상고해 보자.

  먼저 게으른 자는 자신의 게으름을 게으름이라 말하지 않고 다른 무엇 때문이라고 변명을 한다.
이것이 게으른 자의 모습 중에 하나이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에 속한다. '변명하기'.
정당한 이유가 아니라 '변명'이라는 것인데 이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는 내용의 말들이기 때문이다.
[게으른 자는 춥다고 밭을 갈지 아니하리니, 그리하여 추수 때에 그가 구걸하겠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리라.](잠 20:4)
[게으른 사람은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으니, 내가 길거리에 나가면 죽게 되리라." 하느니라.](잠 22:13)
잠 20:4에서 정말 [춥다고 밭을 갈지 아니]한다면 게으른 자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밭가는 시기는 결코 추운 시기가 아니다.
정말 추워서 밭을 갈지 못할 상황이라면 성경은 그를 향해 게으른 자라고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22:13에서 밖에 사자가 있다고 해서 밖을 나가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주의해 볼 것은 사자는 밖(with out)에 있다는 것이다(히 13:2의 진영 밖과 같은 경우). 그런 사자를 길거리(street, 거리,1번가)에서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일 문 밖을 나서자 길에서 사자를 만날 수 있는 그런 일을 실재 경험 할 수 있다면 김포공항에 잠수함이 들어오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게으른 자는 이처럼 이유가 될 수 없는 변명을 대지만 성경은 그의 속마음을 밝히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게으른 자의 욕망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의 손이 수고하기를 싫어함이라.](잠 21:25)
싫어함이라!! 추워서가 아니라! 정말 사자가 문 밖에 있어서가 아니라! 싫은 것이기 때문이다!!
게으른 자가 성경을 읽으라는 주님의 말씀(마 4:4, 요 5:39)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가 읽지 않는 것은 읽기 싫은 것이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가라'(마 28:19, 막 16:15)고 말씀하셨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지 않는 것은 가기 싫은 것이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게으른 자의 변명이 이유가 될 수 없는 변명이라는 것을 더욱 확증해주는 말씀이 있다.
[게으른 사람은 사냥해서 잡은 것을 굽지 아니하나...] (잠 12:27)
게으른 자가 밭은 갈지 않지만 '사냥은 한다'는 것이다.
사냥은 왜 하는 것일까? 이는 그가 좋아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 일은 보통 힘이 요구되는 일이 아니지만, 즐거움이 있기에 산을 타고, 계곡도 넘는다.
그러나 사냥한 포획물을 굽기 위해선 털을 뽑고, 배를 가르고, 내장을 긁어내야 하는데 이런 일은 별로 즐겁지 않기에 결국 굽지 못하고 만다.
오늘 날의 게으른 자들도 여행을 가고, 낚시도 가고, 밤새워 게임을 하는 강건함(?)도 보이지만 주님의 명령 앞에는 할 수 없는 이유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변명일 뿐이다.

  이처럼 성립 될 수 없는 이유를 대는 그 게으른 자는 그러면서 자신은 지혜롭다고 착각을 한다.
[게으른 자는 이유를 댈 수 있는 일곱 사람보다도 자신을 더 지혜롭게 여기느니라.](잠 26:16)
마치 배짱이가 한 여름에 시원한 그물 침상(잠 26:14)에 누워 땀 흘리며 일하는 개미를(잠 6:6) 바라보며 어리석다 말하는 것처럼...
성경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착각하는 그 게으른 자에게 실재는 지각이 없는, 전혀 지혜가 없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각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갔더니](잠 24:30)
(게으른 자와 지각없는 자가 동일인으로 취급된다.)
게으른 자는 결국 아무 것도 결실을 맺지 못한다.
[게으른 자의 혼은 소망하여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혼은 살찌리라.](잠 13:4)
비록 게으른 자에게도 소망은 있다 할지라도 아무 열매가 없다. 왜 그런가?
그의 손을 감추고(잠 19:24) 꺼내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기도 응답도 받고 싶고...은혜도 받고 싶고..남들처럼... ”소망은 하지만(잠 13:4)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되어진 일이 없다. 이유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 게으른 자에게도 소망은 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정욕이 그 소망을 눌러 결국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게으른 자의 정욕이 무엇인가?
[게으른 자의 욕망이 그를 죽이나니,](잠 21:25)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자자...](잠 6:10; 24:33)
게으른 자의 욕망은 잠자는 것이다(엡 5:14).
게으른 자는 그의 욕망이 그의 소망보다 비중이 더 크기 때문에 게으른 자로 전락하게 되다.
주의해 볼 것은 게으른 자의 게으름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또는 천성적인 성격 때문에 게으를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원함에 의해, 마음에서 나오는 의지의 선택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마 9:4)
[마음에서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모독이 나오느니라.](마 15:19)
게으름이 악인 것은 악한 마음에서 나온, 악한 생각에 의한, 악한 의지의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게으름이 악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실재 이런 게으른 자를 나의 눈으로 본다면 그 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 않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성경은 이미 그런 자에 대한 시선을 정의해 놓고 있다.
[게으른 자는 그를 보내는 자들에게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 10:26)
식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진저리치게 만든다(꽉 낀 샷시 창을 억지로 열 때 나는 소리를 들을 때나, 칠판에 못으로 긁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연기가 눈에 들어가면 짜증 가운데 눈물이 난다. 이처럼 게으른 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하기 힘든 고통을 준다.

  이쯤에서 우리는 게으른 자의 모습을 보았으니 교훈을 배워야 하겠다.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각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갔더니 보라,...그때 내가 보고 곰곰이 생각하였으며, 그것을 쳐다보고 교훈을 받았느니라.](잠 24:30-32)
게으름은 성도로 하여금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게 한다(잠 13:4, 마 25:26). 뿐만 아니라 영육 간에 생명을 주리게 만들고 나아가 죽이며(잠 6:11; 19:15; 21:25) 주님께 악한 날들을 산(엡 5:16) 악한 종이라는(마25:26) 책망을 듣게 만든다.
게으름에 대한 책망은 요즘처럼 더위가 찾아오는 게으르기 쉬운 계절과 마지막 때를 향할수록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일 것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벧전 4:7)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깨어 있어 자기 옷을 지켜서 벗은 채로 다니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자기 수치를 보이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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