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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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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달려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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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갈 길!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사도(apostle)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로  '보냄을 받은 자'(sentone)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고(행 9:4),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롬 11:13) 선택 받은 주님의 그릇(행 9:15)이었다.
[가라, 내가 너를 멀리 떨어져 있는 이방인들에게로 보낼 것임이라.](행 22:21)
사도로써 바울은 이때부터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물론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전했...](행 20:27)지만, 그의 중심 사역은 복음 전파였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게 하려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보내셨노라.](고전 1:17)고 자신의 사역을 밝힌다.
이것은 [주께로부터 받은 사역]인데 그 내용은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이다(행20:24).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얼마나 이 사명을 훌륭하게 감당했는지 그의 남다른 표현의 고백에서부터 알 수 있다.
그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나의 달려갈 길”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가라”(행 22:21)는 명령을 받은 때부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달려가야 할 길로 고백했고(행 20:24), 거의 다 달린 후에도 [달려갈 길을 마치](딤후 4:7)었다고 고백한다.
유의해 보아야 할 것은 바울은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주님으로부터 “가라”(마 28:19)는 명령을 받았지“달리라”는 명령은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복음전파의 길을 달려가야 할 길로 여겼던 것이다.

  성경에서 “달려갈 길”이란 표현이 나온 문맥을 보면 모두 복음 전파와 관계된 구절임을 볼 수 있다. 그 특별한 표현이 기록된 구절들을 살펴보자.
[내가 약한 사람들에게 약한 사람같이 된 것은 약한 사람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이라.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이렇게 행함은 내가 너희와 함께 복음에 동참하고자 함이라. 경기장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모두 달릴지라도 한 사람만이 상을 받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너희도 상을 얻게 되도록 달리라.](고전 9:22-24)
복음 전파를 위해 달리는 것에 대한 내용으로 바울은 우리 모두에게도  [그러므로 너희도... 달리라]고 도전한다.!  
[내가 계시를 따라 올라가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전파한 복음을 그들 앞에 제시하였으되, 유명한 사람들에게 따로 전한 것은 어떻게 하든지 내가 달려가야 할 일과 달려갔던 일들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갈2:2)
당시는 복음이 왕성히 전파되어야 할 중대한 시기였는데 어떤 ‘유명한 사람들’이 바울이 전파한 복음에 누룩(갈 5:9)을 섞고자 했다.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다시 전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달려가야 할 일과 달려갔던 일들이 헛되지 않게]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빌 2:16에서도 [생명의 말씀을 제시하여 내가 헛되이 달리지도 아니하였고 헛되이 수고하지도 아니하였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하려 함이라.]
오늘날 [생명의 말씀]인 ‘구원의 복음’은 전하지 않으면서 동분서주하는 많은 ‘선교사’들은 이 말씀에 따르면 헛되이 달리고 있고, 헛되이 수고하고 있는 것인데 결국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게 없게 된다.
[그리스도의 날]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으로 바울은 복음을 통해 낳은 빌립보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주님 앞에 [자랑하려]고 한다. (구령자가 받을 면류관은 자랑의 면류관이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오실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겠느냐?](살전 2:19) 이처럼 복음전파의 사역은 바울에게 있어 달려갈 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신뿐만 아니라 침례인 요한이 가야할 길조차도 [달려갈 길]이었다고 대변해 주고 있다[요한이 자기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나서] (행13: 25).
물론 침례인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달리진 않았지만, 복음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 받은 자로 전했으며,  하나님의 어린 양, 곧 세상 죄를 제거하기 위해 죽으실 구원자로 이스라엘에게 전했던 것이다.
침례인 요한도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요1:6)으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증거하라고 보내심을 받았](요 1:8)던 사람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성령께서 증거 하시는 것은 침례인 요한 역시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그의 달려갈 길을 열심히 달렸다는 사실이다.
침례인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그것이기에 그 일을 다 하고 목베임 당해 죽었다.
어찌 보면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 중 가장 큰 사람이었던(마 11:11) 그가 초라하고 볼품없는 죽음으로, 그것도 너무 일찍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의 죽음이 헛되거나 부족하지 않은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완수했고 그도 바울처럼(딤후 4:7) 달려갈 길을 마친 후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바울을 통해 고백케 하시고 기록하신 “달려갈 길”이란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시면서 깨닫게 하고 싶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복음을, 전하러 가야 할 그 길은!! 여유 있게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닌, 달려갈 길이라는 사실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전하는 일’은 나의 할 일을 다 마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 가야하는 길이 아니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딤후 4:2), 시간이 있든지 없든지, 없다면 사서 얻어(엡 5:16)서라도 달려 가야할 길이라는 것이다.
‘달려간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의 실재가  마음이든지, 몸이든지 말이다!

  성경에는 말 그대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을 달려갔던 사람이 있다.
행 8:29에서 [그때 성령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시기를 "가까이 가서..]라고 말씀한다. 성령께서는 흔히 말하는 지상명령(마 28:19)처럼 빌립에게 그냥 [가서] 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러나 다음 절인 30절에서 빌립의 행동을 보면 “[그러므로 빌립이 거기로 달려가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 성령에 의해 고백되어지고 (바울의 경우처럼), 기록되어진 성경 표현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러 가야 할 길은 [달려갈 길] 인 것이다.
복음이 무엇인지 아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 말에 어떤 반문 없이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그래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설명한다면 그 이유는!

  1. 복음을 전하는 일이 달려갈 만큼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눅 9:59에서 주님은 어떤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는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 지내게 하옵소서.”]라고 말했는데, 그 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로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으셨으리라. “시간이 없다. 네가 그 일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복음을 듣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죄인들이 얼마나 많을런지... 아들아! 시간이 없구나! 너는 어서 빨리 달려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과연 우리의 생에 있어 무엇이 이 일보다 시급할 수 있을까?
그리고 주님은 요 4:35에서 [너희가 아직도 넉 달이 있어야 추수할 때가 된다고 말하지 아니하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이는 곡식이 추수하도록 이미 하얗게 되었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녀들아, 지금 때가 어느 때인 줄 아느냐? 지금은 곡식거둘 때가 아니다! 추수 때는  아직도 멀었다! 세상 사람들을 보라! 이미 하얗게? 되었다. 곧 멸망으로 떨어질 판이다. 그렇게 되면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전하지 못 할 텐데, 지금 양식 걱정이나 할 때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말하며 염려하지 말라.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마6:31,33)
분명 잃어버린 혼을 거두어 들이는 일보다 시급한 일은 없으리라!

  2. 복음은 승리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복음이 기쁜 소식이 아니었다면 바울은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전파하기 위해 가야할 길을  달려가서 전하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바울은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에 속하지 않는 타국인이요 약속의 언약들로부터는 생소한 사람이었으며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었](엡 2:12)던 이방인들에게 “여러분!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도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값없이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에 묶어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살리심으로 사망을 이기고 다시 사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허물과 죄들 가운데죽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여러분에게 구원을 베푸셨습니다.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여러분의 죄들을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분을 여러분을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하시고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여러분이 가야할 지옥에 가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여러분이 받아야 할 죄의 심판과 지옥의 형벌을 여러분을 대신하여 받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라고는 단지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이처럼 기쁜 소식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받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길 원하시는 분들은 저를 따라 이렇게 기도 하십시요!....”
이처럼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는 사도 바울의 발걸음이 어찌 가볍지 않을 수 있으며, 달려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복음은 이방인들에게도 분명 기쁜 소식이었지만, 앞서 여전히 율법으로 구원받겠다고 율법의 의를 자랑했던 바울 자신에게는 더 없는 기쁜 소식이었으리라.
바울은 사망을 이기고 자신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고전 15:57)하면서 그 승리의 소식을 전하고자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행 20:24) 여기면서 달렸던 것이다.
마치 아테네의 마라톤 광야에서 그리스 군대가 침략해온 페르시아 군을 패주시켰을 때, 그리스군의 한 병사가 자기 민족의 승전소식을 알리기 위해  40여km를 기쁘게 달렸던 것처럼 말이다.  
성경은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쁨으로 달리는 성도의 발을 아름다운 발이라고 말씀한다.
["화평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과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롬 10:15)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여!
잠시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자!  나의 발은 아름다운 발인지...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자! 이미 하얗게 되어 곧 멸망으로 떨어질 것 같은 많은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복음을 위해 일생을 달렸던 사도 바울의 권면에 귀 기울여 보자.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이렇게 행함은 내가 너희와 함께 복음에 동참하고자 함이라... 그러므로 너희도... 달리라.](고전 9: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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