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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명언 :::
(2021년 07월 26일 )
많은 사람이 충고를 받지만, 오직 현명한 자만이 충고의 덕을 본다.(푸블릴리우스 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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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로 돌아가라
 관리자    | HIT : 5,264 |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에 거하며, 거기에서 네가 네 형 에서의 얼굴을 피하여 도주하던 때에 너에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 하시더라. 야곱이 자기 가족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신들을 버리고 정결케 하며 너희 옷들을 갈아입으라. 그리고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고난의 날에 내게 응답하시고 내가 갔던 길에서 나와 동행하셨던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리라." 하니 그들이 자기들의 손에 있는 모든 이방신들과 그들의 귀에 있는 모든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었고, 야곱이 그것들을 세켐 근처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다 감추었더라. 그리고 그들이 길을 갈 때, 하나님의 공포가 그들 주위에 있는 성읍들 위에 임하므로 그들이 야곱의 아들들을 뒤쫓지 못하더라. 야곱이 자기와 동행했던 모든 사람들과 카나안 땅에 있는 루스, 곧 벧엘에 이르러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그가 그의 형의 얼굴을 피하여 도주했을 때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라.](창 35:1~7)

  본문은 야곱이 세켐에서 맞게된 영적 위기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벧엘로 돌아가게 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고 말씀하십니다.
벧엘! 과연 그곳은 어떤 장소이기에 야곱이 주저함 없이 그곳으로 돌아가자고 화답한 것입니까?
벧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곳은 1절 말씀대로 야곱이 형 에서의 얼굴을 피하여 도주하던 때에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창 28:10~22).
야곱은 ‘찬탈자’라는 뜻입니다. 창 25장에서 형 에서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찬탈하였고, 27장에서는 에서의 축복을 아비 이삭으로부터 간교한 방법으로 찬탈했습니다(창 27:35).
이에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분을 품고  죽이려고 결심을 합니다(창 27:41). 이 계획을 들은 어머니 리브카는 야곱에게 하란에 있는 자신의 오라비의 집으로 도피하도록 일러줍니다(창 27:42~43).
야곱이 하란을 향해 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러 돌을 취해 베개를 삼고 잠을 잔 곳이 벧엘이 됩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의 약속을 받습니다. 창 28:20~22에 따르면 서원을 합니다.  
   벧엘은 야곱에게 하나님을 만나 축복(야곱의 씨가 땅의 티끌같이 되어 퍼지고, 그의 씨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다는 내용)을 받은 장소이고, 구원의 약속(모든 곳에서 지켜 주시고,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며,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내용)을 받은 장소입니다.
이 약속들은 이루어 졌으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입니다(창 35: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셨다고 무천년, 후천년주의자들이 주장하지만 성경과는 다른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약 1900년 동안 나라 없이 지내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1948년 5월 14일에 하나의 국가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으로 성경에 그 이름이 무려 2700 회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 야곱 또한 말씀대로 형 에서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33장에서 에서는 야곱을 만났지만 죽이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벧엘은 헌신(서원)의 장소였습니다. 창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며, 주께서 내게 주실 모든 것에서 내가 반드시 십분의 일을 주께 드리겠나이다]
야곱게 벧엘은 그런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구원의 약속과 함께 축복을 받은 감격이 있는 장소, 그 감격에 헌신을 결의한 장소인 것입니다. 바로 그 장소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약 28년이 지난 이때에 와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하시는 것입니까?
야곱이 자신의 서원의 장소를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장소를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축복의 내용도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야곱은 현재의 위치에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창 33:18~20을 보십시오. 자기 멋대로 세켐 성읍, 살렘에다 제단을 쌓고 경배합니다.
누가 그곳(세켐)에다 제단을 쌓으라고 했습니까? 세켐에다 장막을 친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딸 디나가 아버지 야곱의 허락도 받지 않고 세켐 땅으로 외출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히위인 하몰의 아들이 그녀와 강제로 동침해 그녀를 더럽힙니다.
이에 야곱의 아들들은 디나의 일로 보복을 하게 되는데 아비인 야곱을 닯아서인지 간교한 방법으로 히위인들을 집단 살인합니다. 다름아닌 할례를 하게해서 그들의 움직임이 둔할때 공격합니다.
이것이 창 33장의 내용입니다. 이일 후  카나안인과 프리스인이 연합하여 보복할까봐 야곱은 두려워합니다(창 34:30). 그리고 창 35:3에서 야곱의 아내 라헬이 라반의 집에서 훔쳐온 우상(신들)을 가지고 있었고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세켐 성 앞에 장막을 치고 거한 후, 딸 디나는 더럽혀지게 되었고 아들들은 살인자가 되었으며 아내와 많은 식구들은 가증한 우상숭배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사면에 적들을 두게된 상황을 맞게된 것입니다.
야곱은 이러한 절망 가운데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낙심 가운데 내가 죽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상태가 야곱의 영적위기 상태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벧엘” 그곳은 형 에서의 얼굴을 피하여 도주하던 때에 하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던 장소였습니다. 야곱은 그곳으로 올라가야만 할 상황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형 에서가 죽이려고 쫏아오는 것이 아니라 카나안인들과 프리스인들의 연합군입니다.
창 35:1 [네가 네 형 에서의 얼굴에서 피하여 도주하던 때에]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을 수 있을것입니다. “야곱아 네가 형 에서에게 쫒기며 죽을까 두려워하던 때에 내가 너를 보호했듯이 이번에도 내가 너를 보호할 수 있느니라. 네가 그 때를 기억하느냐?”
야곱은 벧엘을 잊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을 기억나게 하신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벧엘을 기억합니다.
그 곳이 어떤 장소인지를 고백하면서 그곳을 향하여 가자고 가족들에게 말합니다(창 35:3). 벧엘로 올라가자!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자! 하나님을 만나러가자!
왜냐하면 모든 문제의 해결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그 하나님을 잊고 있었던것입니다.
야곱은 경배의 대상으로써의 하나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창 33:20에서 제단을 쌓고 경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모든 길에서 자신을 지켜주실 수 있는 ‘구원의 능력’을 지니신 분으로써의 하나님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창 33:20에서 야곱은 자기 뜻대로 경배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야곱이 세켐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거한 결과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야곱은 영적으로 파산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부정적인 결과는 그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에 장막을 쳐서는 안되었습니다.
아니 그 이전부터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창 29:1 [그 후 야곱이 계속 이동하여 동쪽 사람들의 땅으로 들어와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항상 부정적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란에서 아내(레아, 라헬)를 얻기위해 14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고, 12명의 아들과 딸 디나, 그리고 많은 가축을  얻었습니다.
총 20년을 거하며 가정과 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벧엘로 올라오기까지 약 28년이라는 가간은 영적 방황기간이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있었던 기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물론 순간순간   하나님의 허용하신 뜻 가운데 인도하심도 있었지만 하난님의 직접적인 뜻 가운데 있지는 못 하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서원을 잊고 자신의 삶을 계획하였고 결국 해결점이 안 보이는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영적파산 직전까지 오게된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에 따른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위기상황이 완전히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가 기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야곱이 이러한 위기를 맞지 않았다면 벧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침체의 상황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삶의 위기의 순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문제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열정은 식어 마음은 냉랭하고,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거추장스럽게 여겨지며, 예배는 드리지만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만나지 못한체 형식적인 섬김이 지속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침체입니다. 영적위기 상황입니다. 만일 어떤 성도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 성도는 오늘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이에 성도는 야곱처럼 결심해야합니다. “벧엘로 올라가자!”라고!  
벧엘로 올라가서 엘벧엘, 벧엘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벧엘로 올라갈 필요를 느끼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러면 주저말고 벧엘로 올라 가십시요. 벧엘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십시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 주셨던 그때를 찾아가십시요.
여러분을 구원하셨던 때, 여러분의 마음에 은혜를 부어 주셨던 그때를 더듬어 보십시요.
구원의 확신을 얻어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눈물을  쏟으며 기뻐했던 감격의 때를 기억하시고 더듬어 올라가십시요. 그곳이 여러분의 벧엘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야곱에게 더이상 장소가 아니듯이 우리에게도 ‘장소’가 아닙니다.
엘벧엘, 벧엘의 하나님입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던 어떤 장소가 아닙니다.
엘벧엘의 하나님을 만나라는 말은 구원의 감격을 되찾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보라는 말입니다. 영생의 기쁨을 회복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영생을 주신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했던 서원을 이루라는 말도 아닙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계획과 능력을 믿고 살아갑니다.
야곱처럼 부유해졌다고 하나님을 떠납니다. 아내 때문에,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갑니다. 물론 그도 한때는 구원을 받고 기뻐하였고, 진리를 알았다고 바른 성경을 알았다며 기뻐했던 사람이었겠지요.  기도에 응답하시고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고 기뻐하며 간증도 했겠지요.
그런데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이전의 자신의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나아가 담을 쌓고 살아갑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어디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멀리 떠나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벧엘로 올라가자라는 화답을 하시겠습니까?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벧엘로 올라갈 필요를 느끼십니까? 올라가기를 원하십니까?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올라가십시요. 그런데 올라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다음의 세 가지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로,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방신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야곱은 아내 라헬이 라반의 집에서 우상을 훔쳐 낼때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버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에 영적으로 연약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또 행할 힘도 없었습니다.
우리들도 종류는 다르지만 돈, 세상, 사업, 오락, 명예 등의 우상을 섬길 수 있는데, 우상 숭배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보이는 어떤 것을 섬기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하는 자신의 우상숭배에서 돌이켜야만 합니다.
  
둘째로,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두 번째 준비로서 야곱은 자신을 “정결케 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 정결케하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30년 전에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세상에 살면서 자신만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정결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요일 1:9 말씀처럼 우리도 진실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기 원한다면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 자신을 정결케 하는 일,곧 자백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로, 의복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의 삶의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삶과 새롭게 주신 신분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바울도 [이전 행실에 관해서는 기만의 욕망에 따라 썩어진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너희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 안에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 23)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성품과 육신에 속한 모든 옷을 벗고 주를 위한 삶의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렇게 했을때 야곱과 그의 가족은 모든 것을 회복하고 문제를 해결받았으며 축복도 재확인 함으로 확신을 얻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바꿔 부르십니다. 이미 야곱은 얍복 여울에서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창 32:28). 그러나 아직 바꿔 부르시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름이 바뀌고 나서도 아직 우상숭배와 세상적인 삶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벧엘로 돌아와 바뀐 신앙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바뀐 이름으로 부르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도라는 이름보다 더 귀한 것이 성도의 삶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세켐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환난과 고통이 끝없이 이어짐에도 그곳이 아직 떨쳐버릴 것을 버리지 않은 세켐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벧엘을 바라보십시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오.
그러면 야곱에게 그러하셨듯, 성도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복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사는 삶은 그럴 듯해도 방황과 방탕의 삶이요, 결국 환난과 고통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보여도 결국은 복된 사람입니다.
세겜을 떠나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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