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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명언 :::
(2021년 07월 26일 )
많은 사람이 충고를 받지만, 오직 현명한 자만이 충고의 덕을 본다.(푸블릴리우스 시루스)
::: 협력 사역 :::




"예배"를 드리라.
 섬김이    | HIT : 4,870 |
                                "예배"를 드리라.

본문:롬12:1
인간과 짐승간에는 여러 가지의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인간은 문자와 언어를 가지고 있고 또 도덕이나 윤리 규범을 지키는 능력 등이 있으나 짐승은 그렇지를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신에 대한 신앙심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짓든 사원을 짖든 절을 짓든 이런 일은 인간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로서 지능지수가 아무리 높은 침팬지나 돌고래라 하더라도 그들 세계에는 신을 향한 제사나 예배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야만적인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예배와 제사가 있고 또 교회나 절 아니면 사원이 있습니다.
이렇듯 경배의 대상이나 그 방법에는 차이가 있고 문제가 있겠지만 신을 찾아 제사를 지내거나 예배하는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종교행위입니다. 옛적 사람들은 하늘과 땅, 해와 달, 그리고 별 같은 천체나 바람, 비, 번개, 천둥 같은 자연 현상들을 숭배했는데 그것을 자연숭배(Nature Worship)라고 합니다.
또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새겨서 몸에 지니고 다니면 그것(부적)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는 행위가 있었는데 그것을 성물숭배(Fetish)라고 하며, 이러한 인간의 행위들은 결국 피조물을 신격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상반되는 우상숭배가 됩니다.
무엇보다 인간이라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드리는 생활을 첫째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가 어떠한 것인지를 살피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예배를 온전히 드리기 위한 예배자의 자세를 갖추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예배가 무엇인지 가장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부분에 대해서 설교하고자 합니다.
왜냐면 예배에 대한 기초가 없는 것이 우리 안에서 종종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배의 가치는 어떠하며, 예배가 지닌 의미와 예배의 방법에서도 실제적인 면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런 예배를 드리기 위한 실제적인 지침을 설교하고자 합니다.
그럼 예배가 무엇인지부터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예배는 가장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 말의 뜻은 경배라는 말의 뜻이지만 경배는 예배에 포함되기 때문에 먼저 경배라는 말에 있는 의미를 통해서 예배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영어에서 경배라는 worship은 두 가지 말이 합쳐진 것입니다. 하나는 worth-가치가 있다.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ship은 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worship은 할만한 것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라는(ship)이 명사로 사용되면 '신분'이라는 의미가 되는데 그럼 가치 있는 신분이 됩니다.
그래서 경배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담고 있는 모습이고 동시에 경배하는 자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그리고 동시에 경배하는 자의 신분은 가장 가치 있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 보실 때 가장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경배란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는 돌리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이 땅위에서 예배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본문에서도 합당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잘못된 사고를 가진 사람 중에는 복음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예배를 소홀히 해도 된다고 합니다. 예배보다 복음 전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복음 전하는 일,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배하지 않는 자가 복음전하는 일을 잠시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지속될 수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기란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선순위가 잘 못된 사람들이 가끔 문제를 일으킵니다.
서울 크리스챤 중고등학교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있으면 세상의 아이들에게 복음이 막힌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아이들에게 복음의 문이 단절된다는 것입니다. 일리는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은 높습니다. 현재의 중고등학생들에게 얼마나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전하다 왕따 당하면 그 따돌림을 믿음으로 극복하며 여전히 빛의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오히려 잘 성장해서 일꾼이 된 후에 전하면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배가 복음 전하는 일 보다 더 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려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이 말은 예배드리는 일이 대통령을 만나는 일보다, 친척결혼식보다, 심지어 나의 결혼식보다 더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존 맥아더는 예배에 대한 표현을 "최상의 존재에게 표하는 최고의 경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훗날 돌아볼 때 과연 우리 생에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겠습니까? 어떤 일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사업해서 돈 많이 번 일이?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이? 과연 그런 일이 가장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 있는 일이었고 그래서 그 기억이 소중하다고 고백하겠습니까?
나폴레옹이 구라파와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다 워털루 전쟁에 참패하고 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기자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페하 평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그럴 때 나폴레옹은 조용히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습니다. 전쟁에서 전투가 치열하던 어느 날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리던 때였노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많은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많은 나라들을 지배했던 일보다 더 가치있고 소중한 일이 예배라는 것을 알 수있게 합니다.

두 번째로 예배는 서비스라는 말입니다.
본래 예배란 말은 섬기다, 봉사하다, 존경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예배를 영어로 service 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고 기록 할 때 이 서비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이라.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있고](롬 9:4)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을 말할 때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믿는 주인을 섬기는 자들도 그들이 형제라고 해서 경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더욱 잘 섬겨야 하리니...](딤전 6:2)
그 일을 본문에서는 도리에 맞는 결코 지나치지 않는 "합당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예배(서비스)를 드리는 기준은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 하실까 하는 생각에! 마치 종이 고객에게 하듯이 말입니다.  
음식점에서 종업원의 서비스를 받아 본 일이 있다면 서비스가 무엇인지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요즘 서비스 문화가 발달 되어가고 있습니다. 왜냐면 서비스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주차장, 아이들 놀이공간, 실내 냉난방, 조명, 인테리어, 음향 시설등 모두가 서비스에 속합니다. 고객의 만족을 위해 구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직접 고객과 마주치는 종업원의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종업원의 서비스는 사실 영업실적의 여부가 어떠하든 종업원의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고객의 만족을 위한 종의 섬김이 서비스인 것입니다. 성도는 주인이신 주님의 종입니다. 예배드릴 때 이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주님께서 어떠하실까? 나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내가 부르는 이 찬양을 어떻게 받으실까? 나의 기도에 감사의마음을 보신다면? 믿음의 분량을 보신다면? 그리고 내가 말씀을 듣는 나의 마음을 보실 때 합당하다 하실까? 등을 고려하면서 예배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찬양을 부르는 목적이 나의 만족을 위함이 아닙니다.  나 좋자고 찬양을 드리는 것이나 나의 귀를 간지럽게 하기 위해 말씀을 듣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도 내가 유익을 얻기 위해서(복 받을 것을 계산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합당하고 도리에 맞는 일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떠하냐는 문제에 속하지 않습니다. 나의 상태가 어떠하든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내가 오늘은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피곤하기 때문에 예배드리는 일을 그만두어야겠다!  이러한 자세는 종의 자세가 아닙니다.
농담인지 모르겠지만 탤런트 황*혜가 이혼을 당했다는데 이유가 아침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어느 비 오는 날 아침에 식사준비하지 않고 있는 아내에게 밥 안 하냐고 묻자 황*혜가 답하기를 "창 밖에 지금 비가 내리고 있어, 오늘 내리는 비는 왠지 분위기 있어, 나 이런 날은 밥할 기분이 아냐!" 그랬다가 이혼 당했다고 하는 농담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아내가 출근하는 남편 아침 식사 준비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자기 기분이 밥할 기분이 아니라고 밥을 안 한다면 누가 그런 여자를 아내라고 평생을 함께 하겠습니까?
종에게는 주권이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일이 나의 기분문제, 자존심문제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오늘은 비가 오니까, 눈이 오니까, 너무 더우니까, 부부싸움을 해서 마음이 상했으니까, 오늘은 예배드릴 기분이 아니야! 이 모습은 종의 신분을 망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시며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어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시었습니다.
물론 십자가를 지는 일을 너무 크나 큰 고통이 따르기에 피하고 싶으셔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시라고 기도하셨지만 그러시면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겠다는 순종을 고백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종이라면 주님이 보이신 본을 예배드리는 일에서 나타내어야 할 것입니다. 예배가 서비스라는 것, 나는 그 서비스를 마땅히 해야하는 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예배는 성도의 기본이 되는 의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요4:24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 드려야만 하리라."] "경배 드려야만"!  
요3장7절에서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이라면 거듭나야만 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기본 의무입니다. 그리고 거듭났다면 경배 드려야만 하는 것도 기본 의무입니다.
십계명을 명하실 때 하나님은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주는 질투하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출 20:02~05)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시는 분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때 아무렇지도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을 때 그에게 하신 말씀이 ['너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 분만을 섬기라.'](마 4:10)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 분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원천들을 지으신 그 분께 경배드리라."](계 14:7)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주께 드리라. 예물을 가지고 그 분 앞에 나아가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하라.](대상 16:29) 이 외 많은 성경구절들이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일이 성도의 기본적인 의무로써 제시되고 있습니다.
예배는 성도의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기본은 누차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실 기본이 중요함은 여러 분야에서 가르쳐집니다. 건축, 토목공사에서도 시간이 많이 드려지는 공사는 기초공사입니다.  
기초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곳은 반드시 균열과 붕괴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기본이 되는 일을 무시하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예배를 무시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복음 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다른 어떤 일도 불가능하게 마련입니다.
왜냐면 예배는 모든 일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본이 되는 일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면 그의 신앙생활은 언젠가 중단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미국에 유명한 바이올린 교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 교수는 많은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배출했는데 그의 교수법이 남다르기에 더욱 알려졌고 그 교수 법 때문에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교수법이 뭐냐하면 바이올린을 강습 전에 항상 왼손으로는 스쿼시 볼을 엄지를 뺀 네 손가락으로 쥐고 있게 하고 오른 손으로는 아령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과정에 따라 조정을 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해야 바이올린을 아름답게, 멋지게 연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오른 손으로 스쿼시 볼을 꼭 잡게 하는 것은 바이올린 현을 잘 그리고 오래 잡게 해 주는 힘을 길러주기 위함이고, 왼 손으로 아령을 하는 이유는 바이올린 활을 오래 켜도 힘이 딸리지 않게 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 생명이 유지되고 지속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본 훈련이 없게 되면 언제고 근육이완이라든지 근육마비로 바이올린을 켤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이 훈련이 그 교수가 가르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기본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설교 준비하거나 생활하는 일에 종종 어깨와 뒷목이 뻣뻣해서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떤 운동이 좋을까하다 수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려서 개울 수영에 자신이 있어서 강습을 받지 않고 그냥 자유수영으로 막 헤엄을 쳤습니다.
그러면서 주위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한결같이 같은 자세로 수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공통점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수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몇 번 왔다 같다 하니까 지쳐서 나왔는데 알고 보니 수영의 기본인 호흡 법을 몰라서 힘든 것이었습니다.
들어가서는 코로 내 쉬고 나올 때는 입으로 들여 마시는 호흡 법, 그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 호흡 법을 배우고 난 후에는 더 오래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강습 받는 사람들이 수영 전에 준비운동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나치게 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그냥 천천히 심장에서 먼 부위부터 물 묻히고 들어오면 되는데" 했습니다. 왜냐면 저는 준비운동을 하는 이유가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으려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제가 한 달 정도를 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저의 어깨가 지금은 통증이 있습니다.
나중에 수영 잘하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준비운동을 안 해서 그런 거라고 하더군요.
기본을 모르고 기본을 무시한 결과 수영조차도 오래 가지 않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예배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배를 모르고, 예배를 경시하는 성도는 신실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A. W. 토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부르시면 먼저 그를 예배자로 만드시고, 그 후에 일하는 자로 만드신다.' 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가장 기본 적인 의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영광과 찬양을 돌리기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의 본질을 상실한 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는 성도의 기본 적인 의무라는 것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다.
흔히 예배를 보로 간다는 표현을 교인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는데 옳지 않은 표현입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처럼 "산 제물로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내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만 드리고 몸은 드리지 않는 것, 역시나 예배드리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요즘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예배가 동영상으로 그 것도 실황으로 방영되니까 안방에서 회사에서 예배를 모니터를 통해서 본다고 합니다. 또는 여행 중에 차량용 라디오로 예배를 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배를 모르는 자들의 소행인 것입니다.
이들은 예배를 보는 사람들일 수는 있겠지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아닌 것입니다.
예배를 보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배를 보러 교회에 가는 사람이 어떤 사람과 같겠습니까? 지금 소개할 노인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모처럼 서울 방문을 한 시골 노인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바쁘게 살기에 이 노인을 모시고 나들이 나갈 친척이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아들이 하루는, '심심하실 텐데 극장 구경이나 하고 오시라'며 돈을 드려 보내드렸습니다. 극장 구경이 처음이어서 그러겠다고 집을 나선 노인은 30분이 채 안되어 돌아오셨습니다. " 아니, 왜 벌써 돌아오십니까?" 그러자 시골 노인은 좋아라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똑똑한 서울 사람들도 어리숙한 데가 있더구먼. 아니, 글쎄, 내가 30분씩이나 여기 저기 극장 구경을 했는데 그 바보 같은 사람들이 돈도 안 받지 뭐야. 그 참에 극장 구경 공짜로 잘 했어"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극장 구경하고 오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고, 극장 건물을 구경하고 온 것이었습니다.
교회도, 예배도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좋은 성가를 듣고 축복을 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교회에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에 가야합니다.
그리고 예배는 내가 얻는 것이 아니라 드림으로써 행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드릴 때만이 얻고자하는 것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배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중 제일 좋은 것을 다시 드리는 것이다."
설교의 황제라 불리는 스펄전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어떤 성도가 교회에 가는 일이 기쁘고 즐겁다면 그것은 목사의 설교가 어떠한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만일 당신이 교회 가는 일이 흥미가 없거나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설교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 때문이다. 만일 '내가 예배 때 졸거나 정신이 흐려지지 않고 설교에 열중할 수 있도록 목사님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었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면서 교회에 간다면 당신은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종종 예배장소에 있으면서도 거룩하지 않은가?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골방에 들어가는 것을(기도하는 것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밀을 좋아하지만 그 밀을 빻지는 않는다. 그들은 옥수수를 얻게 될텐데도 그것을 모으러 들판에 나가지는 않는다. 과일이 나무에 달려 있어도 그들은 그것을 따지는 않을 것이다. 물이 그들의 발 밑에 흘러도 그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굽히지는 않을 것이다."
게으른 자의 모습인 것이죠? 소망은 하지만 소망하는 것을 얻고자 수고하지 않는 자!
예배를 보는 자는 방관자입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는 자는 참예자입니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참예자는 책임의식을 느끼며 예배를 드리기 위해 수고  합니다. 그야 말로 헌신적으로!  
그러나 예배를 보기 위해 교회에 오는 방관자에게는 책임의식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냥 주일이 되면! 시간이 되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교회를 찾습니다. 형식적인 섬김일 뿐입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 많은 역사서와 선지서들 안에 내용 중 많은 부분이 당시의 형식화된, 타락한 예배에 대해 책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경청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나이다.](삼상 15:22)라는 말은 바로 의미 없는 껍데기만 남은 경배에 대한 책망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대한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다.
내 몸과 마음과 생각을 그리고 번성케 하신 물질 가운데 일부를 기쁘게 자원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드림으로써 얻게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되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셨는데 예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드리는 자가 받습니다. 그러나 받는 것이 주가 될 수 없습니다. 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산물인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혹 예배를 통해 무언가 받기를 원하셔서 예배에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그러시면 먼저 드리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

이상으로 예배가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결론 적으로 실천적인 지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 예배이고, 그 예배가 종으로써 마땅히 해야하는 서비스이고, 종의 기본의무이며, 그리고 드림으로써 얻는 것이 예배라는 것이라 해도 이런 귀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실천해야 할 일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6:2에 보면 헌금을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따로 저축하여두어서 갑자기 모금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드릴 헌금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예배시 엉겁결에 만원 내려다 십 만원 권 수표를 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농담)   고후8:11, 9:7도 미리 정한대로 준비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헌금만 준비하고 예배를 위한 다른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헌금을 미리 준비하듯 예배를 드리기 위한 다른 부분도 점검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러 주일에 나올 때 성경, 찬송가, 옷차림, 헌금, 마음가짐 등 미리미리 준비합니다. 그러나 주일 아침만 준비의 시간은 아닌 것입니다.
토요일은 주일보다 더욱 예배를 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목자의 설교준비를 위해 기도하는 것! 일찍 잠자리에 들므로 아침에 늦잠 자다가 예배시간에 지각하지 않는 것,일찍 잠자리에 들므로 예배 때 졸지 않는 것, 다른 성도들이 예배에 불참하는 일이 없도록 중보의 기도 등, 이러한 것들이 다 예배를 드리기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이러한 준비가 없이는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일에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예배를 위한 준비가 없이도 예배드리는 일에 성공(?) 했다면 분명 마귀는 죽은 것입니다.
마귀가 살아있다면 그가 무엇을 하지 못하도록 성도를 공략하겠습니까?
오늘 보았듯이 예배는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예배는 가장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서비스(섬김)입니다.
예배는 가장 기본적인 성도의 의무를 실행하는 일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경배로 드림을 통해 영적 보화들을 얻는 일입니다.
예배가 이런 일이라면 이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지 않겠습니까?
예배는 가장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고 싶다면 예배를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배는 내가 드리고 싶다고 드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님을 기억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예배를 드리는 일에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요4:23 읽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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