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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26일 )
많은 사람이 충고를 받지만, 오직 현명한 자만이 충고의 덕을 본다.(푸블릴리우스 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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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살방지 대비책의 선명한 기준을 제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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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방지 대비책의 선명한 기준을 제시하라!  

최근들어 자살 사건은 하루도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는 내용 중 하나이다. 생활고를 비관하여 사랑하는 자녀들과 투신한 한 여인, 휴가 중인 군인의 투신, 성적을 비관한 학생의 투신... 명예, 권력까지 갖춘 재벌 총수의 투신에 이르기까지 연령, 성별, 계층에 관계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들로 인해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자살 사건은 1999년= 1만1713건,  2000년= 1만1794건,  2001년= 1만2277건,  2002년= 1만3055건으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2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하루 평균  36명, 시간당 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셈이다.
서울소방방재본부 구조팀의 올 상반기 자살 관련 출동 건수도 199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151건에 비해 30%가량 증가했다.
민간 사회복지단체 "생명의 전화"의 자살 관련 상담 건수도 올 3월 58건에서 5월에는 88건으로 급증했다. 추측컨대 2003년은 지난해의 1만3055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사회 각계 각층에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자살의 구조적 원것으로 보인다.인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독교계도 자살에 대한 "책임"을 느낀지라 자살 방지 대책을 제시하느라 각 기독교 신문들어야 한다.  [자살증후군 시대 (4․끝)―전문가 진단] 개인주의 사회 풍토가 원인이라는 내용으로 지면이 채워지고 있다.
[교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제도적으로 미비한 점을 채워야 한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 조정현 총무). [대안공동체의 역할을 해 온 한국교회가 앞으로 소속감과 유대성을 높이고  사회적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돌볼 수 있어야한다](국민일보, 2003년 8월 7일, 장로교신학대 노영상 교수). [자살극복에 교회가 나서야!](기독신문, 2003년 8월 5일).
[오늘의 교회가 자살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여 말씀으로 자살이 살인임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크리스챤신문, 2003년 5월 20일, 도봉감리교회 김진호 목사).
자살이 살인임을 설교한다고 해서 자살하지 않을까? 교계의 대안은 또 이렇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성해용 목사는 [생계형 자살의 원인은 매정한 경제논리 때문이고 군․경의 자살은 6.25 이후 바뀌지 않은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며 [기독교가 ꡐ자살하지 마라ꡑ 혹은 ‘자살은 죄악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 뒤 대책을 제시한다. [이제는 교회가 먼저 물량주의와 소비가 미덕이  라는 생각을 벗어 던져야 한다. 교회가 먼저 자성하지 않으면 기독교가 이 사회에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는 어렵다](기독교연합신문, 2003년 7월 27일).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교회가 절약과 절제의 모습을 보이고 이웃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작은 교회가 감당할 수 없을 때 지역 교회끼리 연합하여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기독교연합신문, 2003년 7월 27일).
[자살 예방 교회가 앞장서자- 최근 생활고를 비관한 생계형 자살부터 재벌 총수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계층에 관계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어 문제가 적지 않다. 더구나 자살 신드롬은 계속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 자살은 방법을 총동원하여 예방해야 한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80~90%가 주변에 사전 신호를 보냄에도 사회적 관심의 부족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안타깝게 사라지고 있다.  ... 주변에서 우울증 환자 등 자살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주의 깊게 살필 때 또 다른 자살을 막을 수 있다. 요즘 핵가족 시대에 이웃에 대한 배려를 등한시하고,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실을 볼 때 가난에 내몰리거나 엄청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독타임즈, 2003년 8월 7일).
[자살증후군 시대 -개인주의 사회 풍토가 원인... 정부는 교통사고에 대해선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자살에 대해선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자살 방지, 무엇이 필요한가- 자살은 예방이 최우선인 만큼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국민일보, 2003년 8월 7일).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누구 하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명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과연 이들이 제시한 방법으로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자살을 기도하고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면 돌이킬까? 자살자들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디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쫒아다닐 수 있을까?

우리는 원인을 알면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는 논리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자살 원인을 살펴보자.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동기 중 비교적 자주 눈에 띄는  동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는 ꡐ도피ꡑ형 자살이다.
실업과 가난의 고통, 실연의 고통, 사회적 비난과 멸시 때문에 받는 고통, 이런 저런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삶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을 능가할 때 사람들은 벼랑에서 뛰어 내린다.  
  
둘째는 '보상'형 자살이다.
앞뒤가 꽉 막혀 살 길이 막막한 가장이 가족들의 생존을 위하여 생명보험에 가입해 놓고 사고를 가장하여 죽음을 택하는 것은 대표적인 보상 추구형 자살이다. 또한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의 죽음을 앞세우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이 같은 심리를 역이용하여 부모에게 고통을 주기 위하여 죽음을 택하는 어리석은 자식들도 있다. 이것도 죽음을 통하여 무엇을 얻어내려는 보상 심리라는 면에서는 같은 유형이다.
  
셋째는 '선택'형 자살이다.
이생을 버리도록 세뇌시킨 뒤 재산을 갈취하고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으로  주로 종교, 특히 사이비 신흥종교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넷째로 '희생'형 자살이다.
하나 뿐인 목숨을 이웃과 사회, 나아가 국가를 위해 내놓는 죽음이다. 이슬람의 자살 특공대, 평화시장 봉제공 전태일, 분신 공양하는 중들의 자살이  이 같은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이상  4가지로 간추려진다. 그러나 자살의 원인을 표면에 드러난 것만을 가지고 제시하기에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데 한계가 있다.
심리학자들, 사회학자들이 저마다 자살의 원인에 대하여 이러저러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어느 나라의 자살률이 높고, 언제, 어느 계절, 어느 연령층에서 자살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는가 정도를 밝혀 놓았을 뿐이다. 원인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이들에게서 나온 대책은 위에 제시한 기독교계에서 대안이라고 내놓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 성경적 기준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자. 자살자들의 이유가 어떠하든 그들의 맨 밑바닥에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드러내 시인하지 않을 뿐 절대자의 전능한 권한으로 우주 만물과 인간이 창조되었고, 계속하여 피조물의 운명을 관장하고 있는 절대자에 대해서  알고 있다.  
아니라고 변명을 한다 해도 변명이 될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롬 1:20).
그럼에도 자살한다는 것은 그 절대자의 존재와 주권을 부정하는 도발 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자살자들은 그 절대자가 누구든 간에,  그가 자신을 태어나게 만들었다 해도, 자신이 살고 죽는 것은 그 절대자의 뜻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하겠다는 저항이자 도발이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이 절대자의 존재나 권리를 부정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방법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은 자살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것인가? 다름 아닌 마귀인 것이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마귀가 이미 시몬의 아들 유다 이스카리옷의 마음 속에 주를 배반할 생각을 넣은지라](요 13:2).
마귀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자기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목숨을 끊어 버리는 일을  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살 대비책을 제시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자살 충동은 자살하고자 하는 자의 생각에서 온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서 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전혀 모르기에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주를 배반할 생각을 받아들였던  유다 이스카리옷!  그 또한 생을 자살로 끝내 버렸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마 27:5).  마귀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가 뛰어 내리라고 속삭인다.
이 천년 전 주님을 시험했던 것처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려 보라.](마 4:5)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차라리 죽어버려! 죽으면 끝이야! 모든게 끝이라고! 이 지긋지긋하고 힘든 생활도 끝이라고! 잘 생각해봐, 더 산들 무슨 소망이 있겠어? 고통은 잠깐이야! 자- 뛰어!!"
이러한 마귀의 달콤한 속삭임에 귀를 주고 마음을 주고, 그리고 드디어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긴 그들! 그들의 생각처럼 모든 것이 끝났는가? 모든 것이 해결되었는가? 생전의 고통과 어려움은 모두 사라지고 평안만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양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마귀와 함께 영원히 거할 지옥 불 뿐! 모든 것을 잊기 위해 , 해결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 그들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며 고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죽기를 소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어떠한 소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끝없는 고통 가운데 고통할 뿐...
이러한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인간적인 대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자살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독교신문들에서 제시하던  관찰과 관심, 섬김, 그런 것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살을 택하는 자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임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면 되는 것이다.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니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 12:13-14)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다.
성경은 ꡒ한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다ꡓ고 말씀하신다.
세상에서의 고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바로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사후의 세계에 대한 무지로 인해 쉽게 자살을 택하는 것이다. 그들이 죽음 뒤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우리는 벼랑 끝에 선 사람이 "자살하자!" 하다가 복음을 듣고 "살자"라고 마음을 바꾼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그 예화들은 설교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알게 했다.
거리에서 복음이 왕성하게 전파되었던 필라델피아교회시대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감옥이 비기 시작했고, 술집이 문을 닫았으며 삶을 비관해 유서를 쓰고 자살하려던 많은 사람들이 벼랑 끝에서 구원받은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었다.  
필자도 친구의 자살을 그치게한 한 형제의 간증을 알고 있다.
상당히 문제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는 완악하게 거부했고, 어느 날 늦은 밤 그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되자 죽음을 선택하려 했다. 그러나 얼마 전 들었던 "지옥"이라는 곳이 떠올라 도저히 죽을 수 없었고 이내 그 형제를 찾았다. 그리고는 그 형제에게 대뜸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야! 정말이야? 정말 지옥이 있어? 난 지금 죽으려고 하는데 니가 한 그 이야기 때문에 못 죽겠어!"
그 형제는 상황의 긴박함을 즉시 확인하고 다시 복음을 강력히 전했고 결국 그는 구원 받았다. 우린 이러한 많은 간증을 알고 있고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세상의 소망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돈이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자식의 성공이 되었든 누구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소망이 무너지면 살아갈 힘을 잃어 결국 자살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들이라도 복음으로 구원을 받으면 세상의 소망이 무너졌을지라도 세상이 줄 수 없었던 참 소망을 가지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이 소망을 성경은 의의 소망(갈 5:5)이요, 한 소망(엡 4:4), 복음의 소망(골 1:23), 영광의 소망(골 1:27), 영원한 생명의 소망(딛 1:2), 복된 소망(딛 2:13), 산 소망(벧 1:3)이라고 한다.
이 소망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오직 이 소망만이 참 소망이 되기에 이 소망을 혼의 닻같이 가진 사람은 어떤 환난이나 시련이나 곤경이나 위험이 오더라도 결코 자살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왜 기독교계는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도 복음이 효과적인 자살방지 대비책이 된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있는가? 과연 복음의 능력을 알고 있기는 한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한번 상상해 보자!
이 나라의 5만여 교회의 1200만명의 교인들이 주일만이라도 예배 후 단  30분이라도 거리로 뛰쳐나가 곳곳에서 죽음 뒤에 있을 지옥 심판을 제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면, 그래서 그들이 구원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을 소망하며 살아간다면  무엇 때문에 자살을 하겠는가!
기독교계여! 성경을 알았다면, 구원을 받았다면, 세상 사람들의 자살 방지 대비책의 선명한 기준을 제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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