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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명언 :::
(2021년 07월 26일 )
많은 사람이 충고를 받지만, 오직 현명한 자만이 충고의 덕을 본다.(푸블릴리우스 시루스)
::: 협력 사역 :::




알고 돌아서고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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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돌아서고 거하라.
본문: 디모데후서3:1-5          
                                                                     
그리스도인에게 미래는 어두우면서 밝습니다.
이 말이 모순처럼 들릴지라도 사실인 것은 마지막 때를 갈수록 세상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에 어둡다고 말할 수 있고, 동시에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성도의 소망인 휴거가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에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촛불이 캄캄한 밤에 더욱 밝은 빛을 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은 점점 마지막 때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이것을 성도가 마땅히 알아야 할 시대 현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절에서 “이것을 알라”고 명령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아주 ‘어려운 때’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에 쓰인 헬라어 단어가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무덤위에 앉아 있는 마귀 들린 사람의 상태를 말할 때 쓰인 단어와 동일한 것입니다.
어떤 상태냐면 '몹시 사나워서' 라는 말인데 이 말은 그만큼 마귀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때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 말은 마지막 때에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고 마귀의 교리가 판을 치게 된다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딤전 4:1).
그렇다면 무엇에 대해서 어려운 때라는 것입니까?
본문에 따르면 '성도가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는데 아주 어려운 때'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이 본문을 기록하고 있던  때보다, 그 옛날 초대교회 시대에 극심한 박해가 있었을 때보다, 나아가 다른 그 어떤 때보다 더 어려운 때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모순처럼 들릴지라도 사실입니다.
왜 마지막 날들인 지금이 그 때보다 더 어려운 것입니까?
오늘날은 눈에 보이도록 칼과 창으로 우리를 위협하지도 않고,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는 일도 없는데 왜 그 때보다 지금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오늘날에는 마귀의 역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없도록 연막을 치고 위장을 하고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지 않게 되면 마귀에게 속게 됩니다.  
이 시대는 눈에 보이는 마귀의 역사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과거에는 확연히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마지막 날들의 아주 어려운 때를 살아가는 성도가 알아야 할 것과 실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본문에 나오는 세가지 명령어의 말씀으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1,“이것을 알라”(1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들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마지막 날들에 있게 될 어렵다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로 나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완전배교'라는 말입니다. 교회 시대의 마지막은 배교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보면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는 ‘그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살후 2:3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서는 그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나서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리라.]
본문의 배교의 내용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하나 전부 반대되는 내용으로 나아갑니다.  
간략히 성경의 말씀과 대조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자기를 사랑함: 그러나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고 오히려 죽은 자로 여기라고 말씀하시면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 돈을 사랑함: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말씀하십니다.  
3. 자긍함: 자긍함이란 자기 스스로 긍지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로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는 부자라고 자긍합니다.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이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나 성경은- 사 66:2 [그러한 모든 것들을 내 손으로 지었으며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이루었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내가 보살피리니, 곧 영이 가난하고 통회하고 내 말에 떠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4. 교만:  성경은 벧전 5:5...[이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심이니라.]고 하십니다.
5. 하나님을 모독함:  성경은 전 12:13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니,] 라고 말씀합니다. (개역 성경에는 ‘훼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훼방’과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6. 부모에게 불순종함: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엡 6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골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주를 참으로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십계명에도  있는 내용입니다.  
7. 감사하지  않음: 성경은 살전 5:18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 관한 하나님의 뜻 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8. 거룩하지 않음: 성경은 벧전 1:16 [이는 기록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9. 무정함: 무정하다는 말은 '사랑이 없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제자들로부터 세상 끝날의 표적을 보여 달라는 요청을 받으셨을 때 마 24:12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무엇보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벧전 4:7-8)고 하십니다.
10. 화해하지 아니함: 성경은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24,고후 5:20).
11. 모함함: 성경은 모함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잠 3:29, 딛 2:3). 모함 또는 비방, 고소는 마귀가 즐겨하는  행동입니다(계 12:·10).  
12. 절제하지 못함: 성경은 딤전 6:6 [그러나 만족할 줄 아는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 6:8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이것들로 만족할 것이니라].
  히 13:5 [너희의 생활방식에 탐욕이 없도록 하고 현재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3. 사납고: 성경은 벧전 3:4 [오직 마음에 숨겨진 사람을 썩지 아니하는 것 곧 온유하고 고요한 영으로 단장할지니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값진 것이니라] 사나움은 마귀 들린 사람의 특징입니다! 마 8:28 [마귀에 사로잡힌 두 남자가 무덤에서 나와 주를 만났는데 몹시 사나워...]
14. 선한 것을 좋아 하지 않음: 사 5:20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과, 빛 대신 어두움을, 어두움 대신에 빛을 두며, 단 것 대신에 쓴 것을, 쓴 것 대신에 단 것을 두는 자들에게 화로다!]
성경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말씀하십니다.
15. 배반함: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교사, 부모를 배신합니다. 특히 자신의 영적 지도자(목사)를 배신합니다 (자주 보는 현상임). 이들은 마귀인 유다 이스카리옷의 후예들입니다. 성경은 장로(목사)를 배나 더 존경할 자로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딤전 5;17).
16. 분별이 없고: 무엇이 가치 있고, 소중한지를 모르고 삽니다. 마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았던 에서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말씀을 사용함으로 감각들을 단련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들](히 5:14)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7. 자만 함: 성경은 [너희가 자만 가운데 기뻐하고 있으니 그러한 기쁨은 다 악 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약 4: 16) .
18.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사랑함: '성경은 향락 속에 사는 자는 살아있으나 죽은 자'(딤전 5:6)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첫째로 하라'(마22:38)고 그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9.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부인함: 모양만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교회처럼 보입니다. 목사처럼 보입니다. 성경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이 그럴듯 해 보입니다.
경건의 능력을 부인한다고 했는데 모든 경건의 능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경건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얻게 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딤전 3:16).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양 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히 4:12).
그런데 그 경건의 능력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합니다. 바른 성경을 부인한다는 말입니다.
개역성경으로도 구원받는 데는 문제 없답니다. (누가 구원 못 받는다고 했나요?) 믿음의 근본사항은 들어있으니 별 문제 없다고 합니다. 그런 것까지 평신도들(?)이 알 필요 없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날들에 있을 어려운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현재 보고 있습니다.  이 모든 배교의 내용들이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에서도 나타나는 마지막 날들의 양상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마지막 때에 이러한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럼 그 일들이 있을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의도하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그것이 정상이니까,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성경대로 되어가는 것이니까, 그냥 어려움 가운데 체념하고 살라고  알게 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2. 성경은 이러한 자들에게서 ‘돌아서라’(5절)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분명한 표현으로 너무나도 단순하게 명령하시기를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편에서는 이러한 자가 복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자들과 함께하고 있다면 어렵습니다. 무엇이 어려운 것입니까?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그런 자들에게서 돌이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먼저 내 자신이 그러한 자라면 나 자신부터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내가 그러한 자라면 역시나 믿음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상태가 이미 배교한 것입니다
디도서 2:11-12 에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신 것은 불경건과 세상 정욕들을 거부하고 우리로 신중하며 의롭고  경건하게 이 현 세상을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의 현상을 알게 하신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들을 알았다면 이런 것들을 행하는 자에게서, 그리고 이런 일들에서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단지 마지막 5절에 있는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그런 사람들에게서만 돌아서라는 것이 아니라  19가지의 모든 내용을 행하는 사람들과, 또 내게 그런 모습이 있다면 그 행위에서 돌이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만을 사랑했었다면 거기서 돌이켜야 합니다. 돈을 사랑했다면, 자긍했다면, 교만했다면,.... 이런 것들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고, 배교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불경건'을 알지만 돌이키지 않습니다. '죄'인줄 알면서 그만두지 않습니다. 돌이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돌이켜야 하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으면 마귀의 역사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저는 본문 6~9절에서 돌아서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돌아서지 않으면!! 6절에 있는 것처럼 [죄들을 짊어진 채 여러 정육들에게 이끌려 가게 되고], 7절에 있는 것처럼 아무리 오랜 믿음의 생활을 한다해도 [결코 진리의 지식에는 이를 수가 없]고, 나아가 8절에 있는 것처럼 [진리를 대적]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이들은 [마음이 부패]했고, 그렇게 되면 [믿음에 관해서는 쓸모없는 자]로 전락하고, 9절에 있는 것처럼 [더 이상 나아가지는 못 하]는 그에게서 어떠한  진보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그의 삶에는 [어리석음]만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돌이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면서 10-12절까지로 자신의 경건함을 간증합니다.
그의 간증은 다름 아닌 돌아선 자의 간증입니다.
바울은 모든 불경건과 마귀의 미혹으로부터, 그런 일들에 연류된 자들로부터 돌아선 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주 안에서 자랑합니다.
모든 불경건으로부터 돌아선 성도를  '주께서 지켜주신다'고 간증합니다.
그 성도가 경건한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11-12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 없노라고 말할 수 있는 성도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돌아서야 합니다.
결코 마지막 때의 배교의  늪에 빠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활 방식을 따라 살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배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단번에 전해 주신 믿음을 저버리고 돌아서지 않는 것은 배교의 행위입니다.
그런 배교의 소유자가 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날들에 있을 배교의 현상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알게 하신 목적은 배교 하는 일에서 돌이켜 살라고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앞서도 말씀 드렸듯이 돌아서는 행위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나만의 의지로 돌이키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번은 돌이킬지라도 그 돌이킴은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작심 삼일이 될 때가 많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상하시게도 저와 여러분이 돌이켜 사는 삶을 지속해서 살  있는 비결을 알려 주십니다.
그것이 세번째 명령어입니다.

3. 배운 것과 확신하는 것에 꾸준히 거하라!(14절)

이제 바울은 저와 여러분이 온전히 돌아서기 위해서 배운 것과 확신하는 것에 꾸준히 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돌이켜서 사는 삶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12-13절에서 알려 주고 있습니다.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 악한 사람들과 사기꾼들은 더욱 악해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
돌이켜 사는  삶에는 주님의 보호가 있지만 그 보호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박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향할수록 더욱 어려워지는데 악한 자들의 속임수가 더욱 지능화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어려운 상황으로 가는지 속이는 자 또한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속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서도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속게 만듭니다. 성경적 교리가 아닌데 성경적 교리인양 속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 자신도, 우리가 배운 것과 확신한 것에 꾸준히 거하고 있지 않게 되면  속임 당한 채, 배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배웠습니까? 무엇을 확신하셨습니까? 확신하셨다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일텐데 그렇다면 그 확신한 것에 현재 거하고 있습니까?
꾸준히 거함으로 현재 확신 가운데 돌이켜 사는 성별된 삶을 살고 계십니까?
분명한 것은 아무리 세상의 마지막 날들이 어떠하고, 그 내용을 알고, 그래서 그 가운데서 돌이켜야 함을 알고, 그래서 돌이켰다 해도, 배우고 확신한  것에 꾸준히 거하지 않는다면 그 돌이킨 삶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한번의 돌이킴으로 돌이킨 삶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배우고 확신한 것에 꾸준히 거해야 한다는 말씀은 불필요한 잔소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에 이 말씀에 귀 기울여야만 합니다.

꾸준히 거하라는 말씀은 '성경 말씀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15-17절에서 성경을 주신 목적이 나옵니다.
성경은 한번 읽고  안 읽어도 되는 그런 책이 아닙니다. 성경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성경은 알고 있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머리에서 마음으로 이동하기까지는 반복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꾸준히 거하라는 말씀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예배와 성경 공부와 성경 읽기에 우리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열정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이것이 없이도 지킬 수 있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는 이미 속은 사람이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누구도 지속적인 말씀의 공급이 없이는 지속적인 돌이킴의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마지막 때를 분별하셨습니까?
무엇이 배교의 모습인지 확인하셨습니까?  그리고 혹 여러분에게 그런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발견되었다면 그 모습에서 돌이키고자 하는 마음의 결단이  일어났습니까?
아니면 이 진리를 이미 알았기에 돌이킴의 삶이 현재도 지속되고 있습니까?
혹시 몇번의 돌이킴에 실패하여 다시 돌이키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분명히 알 것은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날들을 향할수록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도 우리가 돌이킨 삶을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날들의 배교의 모습을 알게 하시고, 그 배교의  삶에서 돌이켜 사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며, 그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주셨습니다.
분명 여러분은 오늘 말씀으로 돌이켜 사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알고(1절), 돌아서고(5절), 거하라(14절)는 것입니다.  
몰랐다면 알아야 하고, 알았으면 돌아서야하고, 돌아섰으면 그 안에 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거하되 '꾸준히' 이 일은 지속되어야만 합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데 여러분의 시간을, 노력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만 마지막 때가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결코 어려움 없이 믿음을 지키고 성별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일을 이루어주실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 오실때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과 같이 ‘믿음을 지켰다’ 고백할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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