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 바른성경공부 :::
   바른 성경 공부
   성경의 복음
   피흘린 발자취
   반석 위에 선 교회



분류 반카톨릭사 | 폭스의 순교사 | 믿음의 선배들 |
종교 개혁과 참 기독교 신앙 Ⅱ
 관리자    | HIT : 3,650 |
종교 개혁과 참 기독교 신앙 Ⅱ

4. 참 기독교 신앙이란?

오늘날의 교회상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던 1517년 당시처럼 철저히 배교한 상태이다. 배교의 참의미란 믿는다는 사람들이 말씀에서 멀어지고 믿음에서 떠나 버린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믿음으로 받은 것인데 그 믿음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였다.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는 허물과 죄들로 죽어 있었던 상태였다(엡 2:1). 이 말은 우리의 영이 죽어 있었던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던 사실을 내가 믿었다는 것은 나의 육신적 생명은 잘못된 출생에서 비롯된 타락한 생명이었으므로 나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같이 장사되었다가 주님의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갈 2:20). 이것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 나에게 전해진 복음(고전 15:1-4)을 믿고서가 아닌가!

내가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던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했더니, 그 분이 내 안에 들어오시자 나의 죽은 영이 살아났고 나의 혼은 이제 구원받게 된 것이다(고후 5:17).

이제 나는 외적으로는 전과 동일한 사람이지만 내적으로는 다른 한 생명이 살아 있게 된 것이다. 이 생명은 빵으로 사는 생명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생명이다. 이 생명은 속사람이라고 불린다(고후 4:16). 이 속사람이 갖는 생명은 영적인 생명이기에 겉사람인 육신의 생명과는 적대관계에 있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겉사람이 행하는 선과 오래 참음과 열성으로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을 맺을 수 없다. 이 겉사람이 자선을 베풀고, 고아들에게 선물을 주고, 양로원을 지어 주고, 심지어 교회를 지어 주고 자기의 신장을 때어 남에게 준다고 해도 그것은 육신적인 선행, 즉 종교적인 선행일 뿐 하나님께는 열납되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의 다듬어진 육신으로 하나님께 접근하고 교제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법(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의 모든 것, 심지어는 기도마저도 가증하게 여기신다 하셨다. 우리는 일찍이 카인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않았을 때 이미 이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영이 성숙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영이 성숙하는 것은 도외시하고 육신을 가다듬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부르시지도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부르시지도 않았는데 신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대사가 되어, 생계 유지를 위해 성경과는 거리가 먼 행위로 목회를 하며, 갖가지 외적 요건들을 내세워 성경적 교회인 양 나서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 영적 생명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양식인데, 이 영적 양식은 변개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이래 삭제되고 변개된 성경을 쓰면서도 바른 성경의 필요성을 실감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참다운 영적 양식을 먹지 않아도 무방한 사람들만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영적 양식이 필요했다면 바른 성경을 번역했어야 했을 텐데, 이들은 신선한 젖이 아닌 변질된 젖을 먹고 자란 까닭에 병들고 나약한 체질이 되어 버린 것이다.

5. 영적전쟁에서 싸울 용사가 필요하다.

왜 영적인 사람들이 이 땅에 필요한가? 그것은 영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마귀의 세력들이 갖가지 형태로 성도들을 바른 믿음에 서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기 위해서는 영양가 있는 영적 양식을 먹어야만 된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영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그는 마귀의 자녀인데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나님의 교회에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교회가 왜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가? 왜 성경을 읽는가? 바로 이 영적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영적 양식을 먹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설교들(기독교신문들, 기독교 방송들 및 개인 설교집 등)을 보면 그것은 영적 양식이 될 수 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을 볼 때,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교회는 일 주일에 세 번 모이는데, 이는 한 번 모여서는 영적 실체가 세상과 접해 있는 육신적 실체를 관장할 힘을 배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 주일 내내 하루 평균 두 시간 이상씩 TV만 보고 성경을 읽지 않은 사람은 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회의에 잠길 수 있다. 세상 친구들이 술먹는 자리에 끼어, 비록 술은 마시지 않았어도 그들과 세상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일 주일에 이 삼 일을 보낸 사람이면 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거듭난 후 네 주 동안 교회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면 그 사람에게서 영적 흔적을 찾아보기란 매우 힘들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바른 성경이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또 틀린 성경으로 복음을 전해도 무방하다고 하는 사람도 경계해야 한다.

헌신의 의미를 잘 모르는 채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며 일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즉시 헌신해야 하며, 또 헌신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지닌 것이다. 사람들은 영생과 지옥을 실감하지 못하면서 그저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 임종을 맞은 사람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줄 테니 1년만 더 살게 해 달라고 애걸한다. 그런데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인데도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왠 일일까?

이 사람은 자기의 영생을 형식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죽게 되면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성경 말씀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이같이 명령하고 있다.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해야 되는 것이 아까운가? 그래서 다시 자신을 위해서 살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영으로 잘못 태어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몸을 요구하고 계신다.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주님께 드리는 합당한 예배이다. 몸을 드린 적이 없는 사람이 주일 날 교회로 예배드리러 간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이겠는가?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은 사람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다.

어떤 성도가 자신의 지상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기도로 구하여 받게 되었다면 그것을 누구를 위해 쓰겠는가? 우리는 이 세상에 임시로 장막 집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하늘에 시민권을 갖고 있고 그곳에 가는 소망을 갖고 있다. 지상 삶에 연연하고 더 견고히 살 것으로 여긴다면 그에게 하늘 낙원은 한갖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째 계명은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이다(막 12:30).

자기 아내보다, 자식보다, 직장보다, TV보다, 낚시보다, 골프보다, 취미보다, 신문보다, 돈보다, 명예보다, 주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 하셨다. 주님을 최우선에 두지 못한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부인하는 삶이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자신을 내세우려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마 16:24, 막 8:34, 눅 9:23). 그리고 그 다음 절에는 자기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죽으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얻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얻으리라"(마 16:25).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를 내세우려 하면 육신이 나서게 되고 육신이 기세를 잡으면 영은 질식할 수 밖에 없다.

영적 체계는 예수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몸을 관장하시는 것이다. 주님께 내 몸을 내어드려 주관하시게 하면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주관하신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육신이 살아 부상하게 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자기 멋대로 행하게 되어 죄를 짓고 화를 내고, 육신의 일을 행하게 된다. 성령님은 자아가 부인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관장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헌신과는 별도로 우리가 매일 매순간 주님께 내어드려 주님의 관장하에 내 몸을 맡겨드리는 것이다.

그 다음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뜻을 실현하는 삶이 아니라 내 생애를 통해서 주님의 뜻을 실현하시게 하는 삶이다. 주님은 그리스도인 각인에게 계획을 갖고 계신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아도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 하나님이 목자로 세우시지도 않았는데 목자로 나선 사람, 교사로 세우지도 않았는데 교사로 나선 사람, 선교사로 보내지도 않았는데 선교사로 나선 사람들 때문에 복음이 변질되고, 교회가 부패하고,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다. 진리를 올바로 깨달아 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부한 사람이라 해서 그것을 먹고 사는 것과 연계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능력은 은사에 의해서이다. 하나님께서 특정인에게 특정한 사역을 맡기실 때는 그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에게 순교자의 일을 맡기시겠는가? 설교할 수 없는 사람에게 강단을 맡기시겠는가? 성경을 가르칠 수 없는 사람에게 교사를 시키시겠는가? 그 나라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시겠는가? 자기가 먹고 살 대책을 사역과 연관시킨 사람들은 얼마나 가증한가? 주님도 십자가의 일을 경험하실 때 자기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우선으로 두셨다. 그리스도인은 심지어 시련을 겪을 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이 세상에 잠시 사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살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거나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풍조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규범에 따른 삶을 영위하며 성령을 통해서 주님의 주관하에서 살아야 한다. 성도가 일주일에 세 번 모이는데 소홀히 하면 이 삶에서 뒤쳐지게 된다. 성도가 성경으로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기도로 주님과 교통이 없으면 실족하게 된다. 겉사람은 여전히 세상 사람으로 살지만, 속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고 육신을 따라 살면 죽는다(롬 8:5-14).

몸이 즉시 죽지 않으나 성령을 따르지 못하면 죄의 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죽은 몸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거듭나기 전의 우리의 몸이 타락한 몸이었기에 살아있지만 죽은 몬이나 다름 없었던 것과 같은 경우이다.

7. 결론

성경적 기독교 신앙은 현실적이고 명확하며 불변하다. 그 근거는 오직 성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현실적이고 모호하며 가변적인 교리들은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첫째, 잘못된 성경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이단적 교리들(카톨릭, 여호와의 증인, 제칠일 안식교, 오순절 교리, 그리스도의 교회)은 모두가 불분명한 성경 구절로 정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을 믿고 성경으로 배우는 사람들이 성경 외에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근본주의, 보수주의, 복음주의 등에 신앙을 정립시키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바른 성경 없이는 바른 교리가 있을 수 없다. 바른 성경 없이 개혁을 외치고 또 거기에 기대하는 것은 물없는 강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어리석은 자와 같다. 이 나라는 바른 성경 없이 교회들이 운영됨으로써 교회만 있고 신앙이 말라버린 기현상을 낳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 나라의 "개혁자"들은 전도와 선교와 부흥을 외치고 있지만 사실 마귀의 자녀인 세상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나라로 이겨 오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목회자 자신도 거듭나지 못했기에 어떻게 구령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요, 그것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복종하는 것인데도, 복음을 올바로 전하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파"로 매도하여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 그들이 누구의 자녀인가는 그들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다. 이 나라에 이러한 일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이 나라 기독교의 불명예 중에 불명예이다.

소위 "구원파"들이 비평을 받는 것은 성도의 양육을 도외시한 채 구원의 복음에만 모든 것을 집약시키려는 데 있을 것이다. 복음으로 죄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일은 너무나 잘한 일이다. 그러나 구령하였으면 즉시 말씀으로 양육시켜야 한다. 이것이 지역교회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이며 군사는 훈련받고 완전무장을 해야 전쟁에 투입되어 승리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현재 마귀의 세력들과 치열한 영적 전투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거듭난 것으로만 만족하면 그 기저귀 찬 어린 아이가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교회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육성하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을 얻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또한 바른 말씀이 없이는 양육이 불가능하다.

셋째,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루지 않고 자기 뜻을 이루려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최우선 순위, 즉 자기 교회보다, 교단보다, 신학교보다, 집보다, 아내보다, 자식보다, 재산보다, 인정받는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갈 1:10, 막 12:30).

넷째, 교회는 세상과 반대 위치에 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대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교회가 세상에 할 일은 구원의 복음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령하여 지옥에 보내지 않는 일 뿐이다. 예수님은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셨다(요 17:9). 예수님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다(요일 2:15,16). 교회가 세상 일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 없이 왕국을 실현시키려는 후천년주의자, 즉 적그리스도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지 않는데 에수님을 믿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말로만 믿는 그리스도인과 거듭나지 않은 세상 사람과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들과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과는 하늘과 지옥의 차이이다.

개혁은 교단적 신조나 전통에서 벗어나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대로 실천하는 일이다. 이 땅의 교회들이 양적 팽창을 교회 성장으로 알고 있는 한(풀러신학교 피터 와그너와 그 일당들의 영향) 하나님의 피로 사신 신약교회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 있다.

성경보다 교단 교리를 중시하는 한 개혁은 이룩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교단을 형성하여 패를 짜고 있는 한 개인의 믿음이 주님과 손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개혁 그것은 한 번의 결심으로만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실행해야 할 신념인 것이다.

  
55 믿음의 선배들   놀라운 부흥의 도구, 피니  관리자 03·07·09 3837
54 믿음의 선배들   크게 쓰인 작은 그릇, 무디  관리자 03·07·09 3822
53 믿음의 선배들   그리스도의 고난을 육신에 채운 복음의 일꾼, 저드슨  관리자 03·07·09 3741
52 믿음의 선배들   사탄의 왕국을 뒤흔든 그리스도의 용사, 요한 웨슬리  관리자 03·07·09 3859
51 믿음의 선배들   아직도 열매 맺는 조지 뮬러의 믿음의 기도  관리자 03·07·09 3869
50 믿음의 선배들   설교의 왕자, 찰스 헤이든 스펄젼  관리자 03·07·09 3133
49 믿음의 선배들   주님께서 온전하게 인도하신 스코필드  관리자 03·07·09 3223
48 믿음의 선배들   끊임없이 도전한 생애, 윌리엄 캐리  관리자 03·07·09 3413
47 믿음의 선배들   공산 치하에서의 믿음의 영웅들과 리차드 움브란트  관리자 03·07·09 3083
46 믿음의 선배들   위대하신 주인의 종, 허드슨 테일러  관리자 03·07·09 2959
45 믿음의 선배들   18세기의 뛰어난 순회 설교자, 조지 휫필드  관리자 03·07·09 3079
44 믿음의 선배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한 사람, 마틴 루터  관리자 03·07·09 3687
반카톨릭사   종교 개혁과 참 기독교 신앙 Ⅱ  관리자 03·07·09 3650
42 반카톨릭사   종교 개혁과 참 기독교 신앙 Ⅰ  관리자 03·07·09 3569
41 믿음의 선배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 Ⅲ  관리자 03·07·09 3336
40 믿음의 선배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 Ⅱ  관리자 03·07·09 4124
39 믿음의 선배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 Ⅰ  관리자 03·07·09 3828
38 반카톨릭사   종교 개혁의 역사적 의의와 그 문제점  관리자 03·07·09 7554
37 믿음의 선배들   위대한 "이단들"의 역사 Ⅱ  관리자 03·07·09 3146
36 믿음의 선배들   위대한 "이단들"의 역사 Ⅰ  관리자 03·07·09 3302
1 [2][3]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
 

Copyrightⓒ2003 광주성경침례교회 All Right Reserved.
문의 전화: 062-943-1994 , 010-3623-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