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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신 주인의 종, 허드슨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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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신 주인의 종, 허드슨 테일러

영국에서 지구의 반을 돈 지점에 위치한 중국은 광대한 제국으로서, 영국의 면적의 100배나 되고, 지구 표면 중 사람이 살 수 있는 부분의 10분의 1을 차지하며, 이미 1세기 초기에 화약과 종이를 발명했고, 인쇄술이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였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사상은 유교와 도교와 불교의 지배를 받았고,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 대신 조상을 숭배하고, 영적 존재들(여러 잡신들)을 섬기던 민족이었다.

그러나 우리 중국 민족에게도 복음을 전해 주시고자, 작은 키에 변발을 하고 중국인 의상을 입은 청회색 눈을 가진 중국인 아닌 중국인, 60년도 넘는 세월을 오직 중국의 영혼들을 위해 일했던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ylor)를 준비하사 보내 주셔서 사용하신 그의 위대하신 주인을 찬양한다.

카톨릭 "선교사"가 아닌 선교사는 아무도 중국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한 채 19세기를 맞이했던 중국 땅을 위해 준비된 허드슨은, 평신도 설교자이자 약사였던 그의 아버지 제임스 테일러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중국에 주목하게 된다. 이후 17세에 복음서적을 읽다가 구원받은 허드슨은 자신을 중국으로 부르셨다는 강한 확신 속에서 선교사로서의 구체적인 준비와 훈련에 들어갔다.

허드슨에게는 중국어 사전도 문법책도 없었고, 단지 만다린어(중국의 표준어)로 된 누가복음서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사전을 만들어 가면서 중국어를 공부했다. 그는 중국에서의 고된 생활에도 대비하기 위해 푹신한 침대 같은 편안한 것을 스스로 걷어 치웠다. 그는 고생스러운 생활을 견디는 것뿐만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살아 가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했다. 실제로 그는 의사로서 준비하는 동안 오직 하나님께만 자신의 필요를 아뢰고 하나님을 통하여 사람을 움직이는 "영적 근육들"을 더 강건케 하고자 애썼다. 중국으로의 부르심은 그에게 꿈이나 낭만이 아닌 현실적인 헌신과 준비였다.

그 당시 중국에서 기독교의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홍수전이 청(淸) 왕조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여 주도한 태평천국의 난을 맞이하자,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하던 허드슨은 왕립의과대학 회원 자격을 포기하고, 중국인들을 예수님의 발 앞에 인도하기 위해 1854년 22세로 중국 땅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러나 허드슨을 중국으로 보낸 CES(Chinese Evangelization Society)는 사역의 지원에 있어 서툴고 미비했다. [이것은 후에 허드슨 자신이 세운 CIM(China Inland Mission)의 사역의 관리가 중국에서 이루어지도록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나중에 CES는 빌려온 돈으로 선교사들을 지원했다가 해체되었다.

허드슨은 젓가락 사용을 익히면서 유럽식 습관들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머리와 복장까지도 중국인들처럼 입었다. 영국인 상인 공동체나 선교사 공동체에서는 그것을 '우등 민족'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그는 양복을 입으면 눈에는 잘 띄지만 그들의 마음에 다가가기 어렵고, 그들의 복장을 하면 눈에는 띄지 않지만 그들에게 훨씬 더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복음을 들고 간 선교사로서 우리 중국인들을 이해하고 다가오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테일러가 만약 아프리카에 갔어도 최선을 다해 그들처럼 생활했으리라! 이러한 우리 중국인과 같은 차림은 나중에 CIM의 규정이 되었는데, 이 선교회의 별명은 "변발 선교회"였다.

그렇게 중국인들에게 다가서려고 했으나, 죄인들은 그렇게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교사들을 "백귀"라고 부르는 것은 예사였고, 그들을 "예수교 산적 패거리"로 지칭하기도 했다. 병원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의 눈알을 도려 내고, 어린 아이들을 잡아먹으며, 아이밴 여자의 배를 갈라 그것으로 약을 만드는 괴벽이 있다고 선전했고, 이에 흥분한 사람들은 선교 건물을 불태우기도 했다.

비난과 모함은 중국인들에게서만이 아니었다. 영국 하원의 한 공작은 선교 건물의 방화 사건을 계기로, 영국 무역의 이해 관계에 손해를 미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내륙까지 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광신자"로 몰아붙였다.

그러한 대우는 다른 선교회는 연 700달러까지 지원해 주었지만, 그에 비길 수 없는 년 80달러의 후원을 받으면서도 기회가 닿는 대로 어떤 선교사도 하지 않으려고 한 일, 즉 중국 내륙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기에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1858년 천진조약과 1860년 북경협정으로 중국 내륙의 자유와 기독교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보장받기 전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내륙으로 가서 설교하고 성경과 책자를 배포하곤 했다.

그는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성(省)들에 24명, 100명, 1,000명의 선교사들을 보낼 목표를 세워 중국땅을 누벼 나갔다. 그러한 전도 여행 내내 배 안에서나 해안에서나 찻집에서나 거리에서나 사찰에서나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구원의 복음이 선포되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다. 아무도 중국 내륙까지 와서 잃어버린 중국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다. 다른 선교사들은 안전하고 큰 도시인 상해에 주로 머물렀다. 그들은 모두 많이 교육받았고, 또 영국 국교회나 혹은 크고 안정된 선교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 상해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유럽인들의 풍습대로, 심지어 선교사들 가운데도 "세상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부 관리로부터 통역관으로 일해 달라는 요청들을 받고 있었고, 외국인 보호를 위해 주둔한 함대들의 장교들과도 자주 접촉했다. 이런 "선교사들"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그리스도와 만나게 하는 복음전파의 자리에 의료나 교육을 두려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중국의 영혼들을 향한 그의 열정이 단순한 낭만적인 감정이었다면, 내륙 사역의 고된 노동과 그치지 않는 곤한 시련들 속에서 곧 시들고 말았을 것이다. 또 질병, 안락하지 못한 환경, 과로,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과의 사별이 다가올 때 무릎 꿇고 주저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영혼들을 향한 그의 전진은 뒤로 물러남이 없었다.

1900년 반외세 운동이었던 의화단의 난으로 수난을 겪은 주요 인물들은 주로 선교사들과 중국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 130명이 넘는 선교사들과 50명이 넘는 선교사들의 자녀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 CIM은 58명의 선교사와 21명의 선교사 자녀를 잃었다. 그러나 CIM의 선교사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 주신 것을 그분께 받은 과분한 영광으로 여겼다.

또 값을 치른 것이 적을수록 값어치가 적다는 말처럼, 그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의 사별이나 긴 이별 같은 커다란 대가들을 지불했지만, 한 영혼이 온 세상보다 귀하다는 것을 믿었다(그 당시의 우리 중국인들은 그리스도 없이 한 달에 "백만" 명씩 영원한 저주로 향하고 있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사는 곳이 온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채 편안히 안주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원하는 만큼만 주님께 드리고 있다면, 과연 우리의 주인은 누가 되는 것인가?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그저 우리게에 빚진 분, 우리의 그 작은 호의에 감사해야 할 분, 우리가 그분의 뜻에 따라 주는 것을 고맙게 여겨야 할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 그는 중국의 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부르심에 신실하게 응했던 사람이었다.

숙고해 보라. 바로 눈 앞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우리가 전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 주님의 지상 명령에 온전히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신 그분의 뜻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각자는 무엇으로 그분의 위대하심을 나타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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