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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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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돌아 보라
 관리자    | HIT : 6,572 |
                                가족을 돌아 보라

딤전5:8 [만일 누군가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나쁜 자니라.]

본문의 말씀이 나오게 된 문맥을 보면 과부의 부양문제가 언급되면서 나온 말씀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믿는 형제나 자매에게 나이가 든 혼자된 어머니가 계신데 그 어머니를 마땅히 돌보아야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부된 어머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확대해서 말씀하기를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들까지 돌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은 물론이려니와 자기의 친족, 친척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돌아보고 돌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나쁜 자라고 아주 강하고 어쩌면 너무 심한 말이지 않나 할 정도로 단정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겠지요, 자기 어머니가 홀로되셨는데 생활력도 없어서 끼니를 거르고 있는데 그런 사실을 알면서 그 어머니를 돌아보고 생활비를 드린다거나 부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나쁜 자라는 평을 들어도 싸겠지요. 여러분 중에는 그런 분들이 안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단지 가족, 친족들의 물질적인 육적 필요만을 채워주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만 한정해서 보는 것이 이 말씀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아닐 것입니다.
단지 과부의 육신 적인 생명의 문제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육적 필요만을 돌아보고 돌봐주었다면 그는 믿음을 부인한 자가 아니며, 불신자 보다 더 나쁜 자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냐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육적 생명만을 돌아보고 영적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도 이 같은 평가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있을 동안 좋은 음식과 좋은 옷 입혀 드리는 일은 잘해도 그의 영혼은 돌아보지 않고 구원받지 않으셨는데 사는 동안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가 과연 믿음 있는 자라고 할 수겠습니까?  아니면 믿음을 부인한 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불신자보다는 낫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 나쁜 자라 할 수 있겠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불신자야 원래 영적 생명을 모르니, 육적 생명만을 돌본다지만 믿는 자는 육적 생명보다 영적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지요.
과연 사도바울이 육적 생명만을 돌보고 영혼의 생명은 돌아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어차피 나는 지금 과부의 부양문제를 논하고 있는 것이니 지상에서 있을 동안의 생명을 돌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겠습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을 알고 난 후 지상생명 보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오직 그 일을 위해서 사역했던 사도였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 조차도 자기 가족과 친족, 나아가 동족들의 영적 생명을 늘 돌아보고 염려했던 사람이었기에 본문에서 단지 육적 생명만을 돌아볼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9장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9:2-3 [내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슬픔이 있다는 것이라. 육신에 따른 내 형제들,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랐겠노라.]
그가 자기 형제들에 대한 부담감이 얼마나 컸던 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자기 동족이 구원을 받을 수 만 있다면 자신은 어찌되어도 상관치 않겠다는 말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런 마음 때문에 바울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는 성령님의 경고에도 거듭해서 죽는 것도 개의치 않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가족과 친척을 말하고 있는데 이 같은 말을 바울은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롬16:11, 21절에 보시면 바울의 친척이 구원받은 성도들 가운데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읽고!
바울은 자신이 구원을 받고 나서 자기가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자기 가족, 친척, 동족을 돌아보지 않았던 믿음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을 기록할 때 자신있게 담대하게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내 친척을 그리스도 안에 세웠다, 난 내 동족들 가운데 얼마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는 그치지 않는 마음과 슬픔으로 그들을 돌아보고, 눈물로 기도하며 찾아가서 증거 했노라! 그러니 너희 또한 내 안에 있는 믿음과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다면, 너희가 정말 구원을 받았다면 너희 가족과 친척들을 돌아 보라. 그러나 돌아보지 않으면 그 행위는 믿음을 부인하는 행위요, 그 자는 불신자보다 더 못한 자가 되는 것이라"는 말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자신이 사도로써 행했던 치유의 은사나 여러 나라말을 할 수 있었던 방언의 은사나 능력 행함에 있는 게 아니라 복음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롬1:16절에서 말하길[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군가 복음을 듣게 되면 그가 어느 지역의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 안에 숨겨져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행16장에서 자신있게 거리낌없이 담대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 ]
무슨 말입니까? 이 말씀은 "너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듣고 구원을 받게 되면 너는 네 집안에 있는 네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의 헌신적인 구령의 열정이 결국 너의 집안모두를 구원할 것이다"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결코 이 말씀은 "네가 구원을 받으면 너의 집안은 자동으로 모두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은 분명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할 때도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처럼 구령의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되면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이 그 같은 능력을 발휘할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자신만만함은 주님께도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요14:12)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들을 할 것이요 또 이보다 더 큰 일들을 할 것이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주님께서 하셨던 일이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지신 일입니다! 그 보다 더 큰 일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할 것이라고 주님은 조금도 의심치 않고 자신있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주님은[이보다 더 큰 일들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해 주었으면 좋겠다거나,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추측도 아닌, 해야 한다는 명령도 아니라 할 것이라! 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믿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너무도 당연히 복음을 전하고야 말 것이라고 자신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그처럼 여러분에게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할 것이라" "하고야 말 것이라"
사도 바울도 그처럼 확신을 갖고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 너로 인해 네 가족들은 결국 구원을 받고야 말 것이라"
그런데 누가 이 같은 큰일인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이면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나, 구원은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구원의 확신을 가지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결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만 구원받고 말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결코 편안하고 안락한 신앙생활도 하지 않습니다.
박태정형제님께서 분리하시는데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편하게 하고 싶어서 떠나는 게 진짜 목적이 아니냐고!
그 분 생각에 구원을 받는 것이 믿음만으로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신앙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전 그 분이 정말 구원을 받은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 어떤 삶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더니 편안한 신앙생활을 했습니까?
다른 사도들은 어떻고, 믿음의 훌륭한 선배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맨발로 알프스, 히말라야 산을 넘었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로마카톨릭의 고문과 화형 장에서 죽어갔던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스펄젼, 무디, 토레이, 선데이, 뮬러, 웨슬리, 휫필드, 채프만, 머레이, 모건, 라킨, 라이스, 럭크만, 이분들이 편안한 신앙생활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결코 나태하거나 게으르고 편안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본문 말씀만 보더라도 자기 가족들, 친척들의 구원을 돌아보고 구원받지 않았다면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증거하고 가족뿐 아니라 이처럼 쉽게 구원을 받는 것이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증거 하게 됩니다.
구원은 그처럼 쉬운 것이기 때문에 가족과 친척들을 마땅히 돌아보아야 하는 일인데 그러나 그처럼 쉽고 마땅한 일도 하지 않으려 하니까, 성경은 그를 향해 믿음을 부인한자요, 불신자보다 더 나쁜 자라고 호되게 책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성경을 보면 구원은 쉬운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구원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들의 문제는 뭐든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 생각하면 죄인들의 구원은 쉽게 됩니다.
제가 구령을 하고 나면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말을 합니다.
구원받는 것이 이렇게 쉬운 것이었냐고 말입니다. 그럼 저는 그렇다고! 쉽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말을 잇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고!
우리 죄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너무 쉬운 것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셨다고!
그러므로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쉬운 것이었다고 해서 결코 그 구원이 값싸고 하찮은 싸구려 구원은 아니라고 말을 해줍니다.
그리고 더 말해줍니다. 형제 님이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그래야 구원의 가치와 소중함을 더 알게되고 확신을 가지게 된다고... 그리고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거라고..  
그리고 형제 님의 사랑하는 아내, 부모, 자녀들이 있지 않냐고.. 그들도 구원받게 하는 것이 먼저 구원을 받은 형제 님께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줍니다.
이 이야기는 아마 제가 구령한 형제 자매님들에게는 해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고도 누군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사는 삶을 산다면 무슨 뜻입니까?
믿음을 부인 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후 불신자보다 더 못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것은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낙인을 찍어 놓고 있습니다. 마치 그 옛날 자기의 형제 아벨을 죽였던 카인에게 표를 해두셨던 것처럼 자기 부모형제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낙인을 찍어 놓으신 것입니다.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나쁜 자라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변명을 한다하더라도 자기만 구원받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자기 가족과 친척들의 영혼의 상태를 돌아보지 않고 사는 삶은 믿음을 부인한 삶인 것이요, 그는 불신자보다 더 못한 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누구입니까? 불신자는 마귀의 자녀입니다. 어떻게 구원받은 성도가 마귀의 자녀보다 더 나쁜 자로 전락해서 살 수 있습니까? 부모형제를 돌아보지 않고 살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게 무엇입니까? 내가 지옥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부모, 형제, 친척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이고, 그러다 죽게되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는  것을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때문에 성도는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인해 기뻐하지만 동시에 가족들에 대한 염려 때문에 그치지 않는 슬픔과 마음의 고통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슬픔은 긍정적인데 성경은[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은 구원을 위한 회개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느니라]고 고후7:10절에서 말씀합니다.
어쩌면 성도의 마음 안에 이처럼 기쁨과 슬픔이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이 여겨지고, 모순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성경에 따르면 그런 마음이 함께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6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양면성을 이야기합니다.
[영광과 오욕으로써, 또 악평과 호평으로써 증거 하였고, 속이는 자들 같으나 진실하며,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으며, 매를 맞았으나 죽지 아니하였고, 슬퍼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며,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졌느니라.](고후6:8-10)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가 구원받은 것으로 즐거워하면서도 또한 가족들의 구원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책은 그런 책입니다. 계10:8절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하늘로부터 들은 그 음성이 내게 다시 말하여 이르기를 "가서 바다와 땅 위에 서 있는 그 천사의 손에 펴놓은 작은 책을 가지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 천사에게 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그 작은 책을 내게 달라."고 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집어서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겠지만 네 입에는 꿀처럼 달 것이라."고 하더라. 그리하여 내가 천사의 손에서 그 작은 책을 가져다가 먹으니, 내 입에는 꿀처럼 다나 먹고 나니 내 배에는 쓰더라.](계10:8-10)
여러분은 이런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이런 두 마음은 긍정적인 마음인 것입니다. (약1:8절의 두마음은 부정적이지만!)
여러분이 이처럼 정상적인 두 마음을 품고 있다면 여러분이 하셔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나쁜 자니라.]
저와 여러분이 그래도 사도바울에게 한 번 따져 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지나치게 평가할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럼 바울은 뭐라고 말할까요?
다시 따지듯 말할 것입니다. "내가 무슨 심한 말을 했냐고,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을 말하지 않는데 뭘 보고 그에게 믿음이 있다고 평가를 해 줄 수 있겠냐고?"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아마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성도를 향해 창녀보다 더 못한 자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쓴 서신인 히브리서 11장의 창녀 라합을 보여주고 싶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들을 평안히 영접함으로 믿지 아니한 자들과 더불어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히11:31)
믿음으로 정탐꾼들을 영접해서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께서 이 말씀이 가족을 돌보지 않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묻는다면, 바울은 여호수아 2:12절을 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내가 너희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니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에 친절을 베풀 것을 주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달라.] (수2:12)
자기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정탐꾼들에게 간청합니다.
그런데 볼 것은 자기의 구원은 언급조차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모습은 바울이 자기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던 모습과 같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창녀라합이 자기만 구원을 받고 자기 가족들을 돌아보지 않았다면 과연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왜냐면 오늘 본문은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자는 믿음을 부인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녀라합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라합의 부모는 라합에게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어오라고 내몰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라면 적어도 자기의 딸이 창녀로 사는 것을 내버려 둔 무책임한 부모들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렇다면 라합은 자기 부모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가족들 돌아보는 일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멸망당하거나, 말거나, 지옥 가거나 말거나, 내 알 바 아니라고 했을 것입니다.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라합은 그처럼 무정한 창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 어떤 성도들 중에는 라합 만큼의 처지에 있지도 않으면서 자기 부모, 형제, 남편, 아내에 대한 미움과 원망 때문에 그 원수 갚음을 복음전하지 않는 것으로 갚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마라고 생각하십니까?
서울의 모 자매가 시어머니의 핍박이 심하자 예배드리는 일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전화를 해서 왜 예배에 안나오시냐고 물으니 "시어머니 반대가 심하다는 것입니다.
너무 힘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면 그 때 교회 나가겠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말을 다른 말로하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내가 내 시어머니 지옥 보내고 신앙 생활하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너무 지나친 말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행동은 이해하고 위로해줄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어떤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씀드리기를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지내게 하옵소서."](눅 9:59)  
아버지를 장사지내고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그 제자의 아버지가 아직 죽지 않은 상태에 있다면 똑같은 말이 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죽으면(지옥에 보내드리고) 그리고 장사지내고 그때 주님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불신자, 곧 믿음 없는 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겠냐는 것입니다.
그는 라합, 곧 창녀보다 못한 자가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까지 성경이 가족을 돌아보고 그들을 구원할 것을 강하게 독려하고 있고, 그 일을 할 것이라, 자신 있게 말씀하고 있는데, 그럼 우리가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실 누구보다도 가족들을 구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나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이 뭘 안다고? 내 아내가 뭘 안다고? 이처럼 외모를 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말씀하시길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친척과 자기 집을 제외하고는 존경을 받지 않는 곳이 없도다."고 막 6: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주님의 육신에 따른 동생들 중에도 주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 주님의 동생 야고보를 제외한 나머지 요세와 시몬과 유다와 누이들은 주님을 따랐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만큼 가족을 구원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고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포기치 않는 관심이 필요합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양 일백 마리를 가졌는데, 그 중 한 마리를 잃었다면 아흔 아홉 마리를 광야에 두고 그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눅 15:4)
[ 또 어떤 여인이 은 열 개를 가졌다가 한 개를 잃어버리면 촛불을 켜서 '찾을 때까지' 집을 쓸고 샅샅이 찾지 아니하겠느냐?](눅 15:8)
바울은 이같이 포기치 않는 슬픔과 연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가족 구원을 위해서 많은 간절함을 가졌었을 것이고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렇습니까?
분명 그쳐져서는 안될 마음이 있다면 구원받지 않은 가족들에 대한 연민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여러분은 가족구원을 위해 어느 정도의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분명 눈물이 필요 없다면 이 말씀은 아무 의미가 없는 말씀일 것입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선 돌작 밭에 뿌려진 씨는 습기(물)이 없으므로 말라 버렸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 말씀이라고 뿌려지면 다 열매를 맺는 게 아니라 어떤 마음 밭에는 눈물과 함께 씨를 뿌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영적 적용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눈물 섞인 기도가 있기 위해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눈물과 함께 포기치 않고 전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시는 어머니들은 아이가 밥을 안 먹으려고 도망가면 끝까지 따라가며 먹이고야 맙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니까?
그처럼 부모님을, 남편을 사랑하여 끈질기게 말씀을 뿌렸으면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부모, 형제, 남편,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 일서에서는 눈으로 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요일4:20)고 반문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가족에 대한 미움을 가지고 있는 분계십니까? 부모, 형제, 남편, 아내에 대한 미움 때문에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를 포기하고 있는 분계십니까?
그렇다면 창녀 라합과 비교해 보십시오! 과연 그 미움이 창녀 라합보다 더 큰지를 말입니다.  
왜 하필 창녀를 믿음의 사람에 넣어 두셨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선택하신 것은 현명하고, 지혜롭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함입니다.(고전1:27-28)
어떤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전, 도저히 제 부모님을, 제 시어머니를, 제 남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저한테 어떻게 했는지 하나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겁니다. "그래 안다! 그래도 그들이 너를 창녀로까지 내 몰지는 않았지 않니, 네가 라합을 보느냐?"
그러므로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아내나 남편이 어떻게 했든 여러분은 그들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셔야 합니다. 저는 이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간증!
그리고 가족구원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구원받은 자의 행실입니다.
지난주에는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행실이 자녀양육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가족 구원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 아내들아, 너희 남편들에게 복종하라. 이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일지라도 아내의 말없는 행실로 인하여 그들을 얻고자 함이니 이는 그들이 두려움 가운데 너희의 정숙한 행실을 봄이라.](벧전3:1-2)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안 보는 것 같지만 다 보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여러분의 가족들이 여러분의 외모와 말없이 순종하는 행실을 두려움가운데 지켜보고 있습니까?  

자!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님들, 보십시오!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구원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편안하고 안락하고 나태한 신앙생활을 해도 좋다는 말씀은 암시조차 없습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영과 혼과 몸이 주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 받을 것이 없도록 하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이름조차 부르지 말며 또 음탕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농담은 성도에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혐오스런 우상 숭배를 행하여 이방인들의 뜻을 행한 것은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니, 너희는 모든 행실에 거룩 하라, 이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해야 이런 삶을 살 수 있겠나? 하십니까?
그러나 거룩한 행실은 신앙의 많은 연수가 지나야 가능한 게 아닙니다.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확신을 가진 성도이면 누구나 경건한 삶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가족을 돌아보고 그들을 구원하는 일도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구령하는 일은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을 간증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은 당연히 해야만합니다.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향해 그는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나쁜 자요, 추가적으로 창녀보다 못한 자가 되는 거라고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 마땅하겠습니까?

결론
저는 오늘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구원을 위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임입니다.  
그리고 교회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가정들을 구성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가정들이 교회의 구성원으로 있을 때 교회가 더욱 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마귀가 좋아할 리 없습니다. 때문에 가정이 하나되지 못하도록 치열하게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공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을 믿는 믿음가지고 포기치 않고 사랑하는 마음과 눈물 섞인 기도로 거룩한 행실로 다가간다면, 분명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은 성취되고야 말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가족 구원을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시는 신실한 구령자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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